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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 인진미 그룹전] 낙원의 뚬모

2015-12-22(Tue) ~ 2015-12-26(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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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연) 소개

※ 12/22 오프닝 당일에는 김성배 작가(6기)가 참여하는 퍼포먼스가 있습니다.

※ 전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PDF 첨부 파일을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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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진미 작가 노트  

네팔의 무스탕 ’뜸모’에서 시작됐기 때문일까?
우리 눈에 보이는 물체들은 이데아 세상의 이상적 존재가 왜곡된 그림자라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연상이 되는 건. 그에 의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동굴 안에 투사된 그림자를 실
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도심의 중심에 위치한 동굴인 낙원상가에서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들은 어떤 그림자를 실체로 여기며 살아갈까?

 

네팔의 곰빠, 미얀마의 파고다, 낙원상가 그 속에서 사투하는 사람들의 일생은
다르기도 하고, 아마 같기도 하다.
‘살아져야 하는’ 타고난 고행과 벗어날수 없는 현실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의식하는 못
하는 사이에 발화하고, 그들만의 생존방식으로 수행하고 있다. 전시장이나 극장이 아닌 삶이
터전으로 전시공간이 들어가는 만큼, 그들의 일상을 분해하고, 그림자 혹은 실체에 대한 고정
관념을 흐트리려 한다. 그것은 일탈일 수도, 착시 혹은 증강현실 일수도 있다. 아니 그 자체가
실체의 본질일수도.

 

플라톤은 두 가지 복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 복사하는 ‘아이코네스’와 사물을 왜곡하는 ‘시뮬라크룸’, 플라톤은 이야기
한다. 현실은 이데아 세상의 불완전한 복제품이라고, 이미 왜곡된 현실을 또다시 왜곡하는 시
뮬라크룸은, 우리를 이데아 세상에서 더 멀어지게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이다. 하지만 왜
곡 없는 복제가 과연 가능할까? 빛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세상은 인간의 뇌라는 프레임을 통해
해석되고 분석된다. 현실은 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는 순간 매번 새로운 시뮬
라크룸이 탄생된다는 말이다. 쟝 보드리야르는 그렇기에 시뮬라크룸는 현실의 왜곡된 복제가
아닌 또 다른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이야기한다. -‘김대식의 빅퀘스쳔’중에서
이번 흐트러짐의 시도가 향후 새로운 시뮬라크룸으로의 발화의 시발점이 되어

지속적 작업으로 연장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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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

 

 

낙원의 뚬모,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_김지연(미술비평, 전시기획)

 

풍류를 좋아한 한민족에게 ‘악기’와 ‘음악’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전 국토에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는 노래방만 보더라도 한국인의 풍류 사랑은 짐작할 수 있다. 풍류를 즐기는 마음은 사회 분위기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국가에 우환이 있을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이 ‘즐거운 흥’을 매개하는 공연계와 악기 상가이고, 반대의 경우 활기있는
쪽 또한 이 분야다. 그야말로 시대를 읽어내는 리트머스인 셈이다.
40년 넘는 세월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전문상가로서, 악사들의 필수 아지트였던 ‘낙원상가’와 그곳의 상인들은 시대의 촉수가 되어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국민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해 왔다. 그렇다면 이곳이 감지한 오늘의 한국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더 급격하게 침체하였다. 메르스 역시 공연계의 먹구름이었다. 어두운 사회 분위기와 끝날 줄 모르는 경기침체로 낙원상가로 향하던 발길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악기를 만나기 위해 낙원에 오기보다는 웹서핑에 몰두한단다.
이곳 자영업자들의 생존은 그렇게 위태롭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생활하는 중이다. 끊임없이 생존의 방법을 모색하는 낙원상가를 보면서 이곳의 자영업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긴 세월 같은 자리를 지켜온 힘은 존경심을 불러일
으킨다.


예술가들은 늘 생존을 고민한다. 자생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지만, 늘 쉽지 않다.


평균 고도 4,900 m에 달하는 고지대에서 사는 일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티베트 지역 사람들은 그곳을 터전으로 긴 세월 생활해 왔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신체 에너지를 조절하는 수행법을 익혔다. 그들의 언어로 ‘뚬모’라고 부르는 이 수행법으로 티베트 사람들은 육체적인 에너지뿐 아니라 정신적인 에너지까지도 조절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했다. 에너지 조절을 통해 몸 안에 열기를 만들어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얇은 옷만으로도 살 수 있도록 돕는 뚬모는 어떤 환경에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존하기 위해, 자생하기 위해 그들이 익혀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행법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수행자의 나라 티베트는 강한 정신문화를 쌓으면서 따뜻한 공동체를 일구어 왔다.
물질과 자본에 압도된 삶을 사는 도시인들에게 자연에 깃들어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의 일상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티베트의 삶은 우리에게 새로운 지침을 알려줄 수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뚬모 수행은 티베트 사람 뿐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삶을 일구어 나가는 이들 모두에게도 필수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곳에 가고 싶었다.
늘 생존을 고민하는 작가들과 함께 티베트의 정신문화가 티베트보다 더 잘 남아 있다는 무스탕에 가려고 했다. 그곳에서 뚬모 수행자들을 만나 한 수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곳에 가기로 했을 때, 그 일대에서 끔찍한 지진이 일어났고 우리는 궤도를 수정해야 했다. 무스탕과는 조금 다르지만, 여전히 정신문화가 살아있고 수행자들이 많이 생활한다고 하는 미얀마를 선택했다. 기부가 일상인 나라, 따뜻한 공동체가 남아 있는 나라, 나의 영혼을 씻어주는 나라라고 하는 미얀마로 갔다.
미얀마에서 우리는 상상했던 것, 글로 배웠던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풍경을 만났다. 여전히 마음 따뜻해지는 미소가 눈부신 나라였고,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한 사람들을 종종 마주쳤지만, 그들 대부분은 너무 가난했다. 지독한 가난과 극심한 빈부차는 그들 미소가 갖는 의미를 조금씩 비틀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찬란한 금빛의 파고다에 들러, 마치 놀이공원에라도 간 것처럼 하루를 보냈고, 기원의 마음을 불단에 쏟아 놓았다. 그들은 여기저기에 기부를 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미얀마에 다녀온 작가 일행과 낙원상가에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시대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그 안에서 절대로 생존하기 위해 힘쓰는 상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뚬모 수행자’ 특유의 내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만나면서 예술가나 자영업자, 그뿐만 아니라 팍팍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살기 위해 갖추면 좋을 것 같은 ‘뚬모’를 찾아보고 싶었다.
낙원상가 상인들은 그들이 마음 깊이 진정 ‘행복한 대한민국’을 꿈꾼다고 말했다. 그들은 상가의 이름처럼 ‘낙원’을 희망했는데, 그 이유는 나라가 행복해야 그들도 잘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가에 우환이 있으면 그 누구도 ‘풍악’을 울리지 않으니, 그들에게 ‘국가의 행복’은 생존의 필수조건이었다.


정신없이 지내느라 놓치고 살았던 주변을 챙기는 것은 한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미얀마를 다녀왔기 때문일까. 우리는, 좀 소박하고 착해졌다. 연말도 다가오고, 작가들은 낙원에서 내가 아니라 타인을 기쁘게 하는 일, 그 일을 해보기로 했다. 낙원상가에 다가가 상가골목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을 전해줄 수 있다면, 이번엔 그런 일도 의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낙원의 행복’을 위해 본 프로젝트 참여작가들은 상인들을 만나고 교감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업을 풀어나갔다. 그 가운데 중요한 두 가지 이야기는 하늘과 미소였다.
상인들은 낮시간 내내 상가에 머물기 때문에 좀처럼 푸른 하늘을 만나지 못한다고 했다. 상인과 고객 사이에는 따뜻한 미소가 오고갈 때 서로 더 행복할터인데, 조용한 낙원상가에서 만난상인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만나기 어려웠다.
이원호는 낙원상가의 상인들을 만나 매장의 영수증을 받고 그 뒷면에 금박을 입힌 후매장 사장님들의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이 미소 그림들을 모아, 낙원상가 복도에 찬란한 금빛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다. 이름하여 <미소트리>다. 그 과정에서 사장님들의 소소한 사연도 듣고, 그들이 삶을 살아내는 에너지도 만났다. 이정훈은 관객의 가이드가 되어 낙원상가에 설치한 작품들을 마임으로 소개한다. 미얀마 여행기와 더불어 낙원상가에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들을 모아 낙원상가 곳곳에서 마임으로 풀어보이는 공연도 선보인다. 인진미는 하루종일 상가 안에서 생활하는 상인들을 위해 하늘 풍경을 모티브로 한 영상 작품을 설치하고, 낙원상가로 오는 흥미로운 여정을 다룬 영상을 상가 곳곳에 있는 모니터들을 이용하여 담는다.
미얀마에 동행한 작가 외에도 피처링 아티스트로 세 팀을 초대했다. 색소폰 연주자 김성완과 베이스 연주자 김성배가 함께 하는 김성 듀오는 낙원상가 2층 공간을 소리로 채우는 즉흥 연주는 선보인다. 정만영은 미얀마의 종을 상가 복도에 설치하여, 밀폐된 상가 안으로 바람의 소리를 끌고 들어온다. 이정석은 미얀마 바간의 하루 풍경을 슬라이드 쇼로 상영하고 같은 공간에 정만영은 미얀마에서 채집한 소리를 설치하여 분주한 일상을 살고 있는 상인들에게 휴식같은 공간을 제공한다.
한편, 디자이너 스튜디오 기글스는 뚬모 수행을 상징할 수 있는 파고다라는 공간의 탑 이미지와 악기를 다루는 낙원상가를 상징할 수 있는 소리관(소리를 듣고 내뱉는 관의 모습)을 모티브로 이번 전시 디자인의 컨셉을 잡았다. 사람들이 소원을 빌어 띄우는 홍등처럼, 공중에 소원의 성, 기원의 탑을 띄웠다. 전시가 열리는 기간이 크리스마스인 점을 고려하여 일반적인 크리스마스 트리가 갖는 삼각형의 원뿔관의 형태도 연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작가들과 함께 우리의 작업이 낙원의 상인들에게 따뜻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담아 전시를 준비해 보았다. 뚬모를 찾아나선 길이 낙원에 닿았다. 이 인연이 어떤 의미로 이어질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