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Tue) ~ 2025-07-13(Sun)
11:00-18:00
B 전시장1
무료
1) 전시명: 흐릿한 경계의 잔상들
2) 전시일정: 2025.07.01.(화) - 07.13.(일)
3) 전시운영시간: 11:00~18:00
4) 휴관일: 월요일
전시 소개 :
- 작가노트 (2025)
1. 경계
경계는 한때 분명히 존재했었다. 안과 바깥, 너와 나, 이곳과 저곳을 나누는 선은 우리의 세계를 질서 세우는 기준이었고 그 선을 기준으로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선들은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것은 단단한 지지체가 아니라 임시로 그어진 불안정한 구획 설정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2. 붕괴
결국에는 모든 것이 다 힘없이 허물어져 내렸다.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철거되고 덧씌워지는 풍경들 속에서 공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을 형성한다. 여러 단계로 점차 함몰되어가는 감각의 잔류물들 사이에서 내 질문은 더욱 또렷해진다.
-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자리는 과연 어제와 같은 장소인가?
3. 근원
나의 창작은 모호한 감각의 층위에서 출발한다. 나는 폐허가 된 일대를 배회하며 철거된 담장과 허물어진 구조물과 잔해, 사라진 동선의 빈틈에서 감지된 시간의 파편들을 모아왔다. 수집한 수많은 층위를 압축시키기 위해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적 실천을 조각 행위로서 이행한다. 흙은 이 모든 잔상들을 담아내는 감각의 피부다. 축축한 흙은 손의 압력과 시간의 층위를 고스란히 저장한다. 갈라짐, 꺾임, 흘러내림이 가득한 조각 표면은 불완전한 채로 남겨진 도시의 물리적 기억과 감각을 호출한다. 형태적 완결보다는 일시적 가변 상태를 지향하며 서서히 소멸하는 흐름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장소성과 정체성의 붕괴, 그리고 그 틈에 스며든 감정적 지층들을 탐색한다. 기억과 망각, 존재와 부재,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구조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선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규정되지 못한 채 쓰러져가는 것들 -공간의 기척, 기억의 온도, 그리고 파편화된 존재의 조각들- 에 대한 애처로운 애정이다.
4. 질문
이 조형적 탐색을 통해 묻고 싶다. 우리는 어떤 경계를 기억하고, 어떤 경계를 잃어버렸는가? 그리고 그 사라진 경계의 잔상들은 지금 이곳, 나의 몸과 감각에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는가?
이 흐릿하고 불안정한 선 위에서 나는 구체적 형태로 말해지지 않는 감각, 사라지는 것들의 고요한 목소리를 더듬고자 한다. 이 작업은 결국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물질적 기념비이며 잊혀져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한 조형적 저항이 아닐까?
5. 흔적 그리고 새로운 실험
『초예술 토머슨』1)에서는 더 이상 용도가 없거나 기능을 하지 않는 길거리의 구조물과 사물 등을 토머슨이라 부른다. 어쩌면 이제는 토머슨 신세로 전락한 폐허의 시공간에서 균질한 콘크리트의 층위 아래에서 수없이 퇴적된 기억의 단면 조각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창작의 새로운 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탁본 방식으로 흔적의 빈 틈을 메꾸며 다시 조형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 평면과 입체, 초예술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을 지속한다.
1) 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서하나 옮김, 『초예술 토머슨』, 안그라픽스,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