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5(Sat) ~ 2020-09-05(Sat)
C 공연장
032)760-1017
소통하는 예술 - 웁쓰양의 회화, 퍼포먼스에 나타난 관객참여 방식
황소영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발전*하면서 인간에게는 자유가 더욱 강조되었다. 이는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인간이 더 나은 성취감을 얻기 위해 ‘자기착취’가 만연해지는 이유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정신 질병이 수면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소진 증후군을 들 수 있다. 주로 신기록을 세운 운동선수들이 자주 겪는 병이었지만 성과사회로 발전하면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뿐 아니라, 주부, 학생, 취업 준비생까지 흔하게 겪는 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소진 증후군이 우리 일상에 만연해진 그때, 《멍때리기 대회》(2014)가 개최된다. ‘멍 때리기’라는 행위에 맞지 않게 가장 바쁜 서울 도심의 광장에서 펼쳐진 이 대회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금기시되고, 가치가 없는 일이라 일컫는 ‘멍 때리기’ 혹은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를 대회로 만들어 가치 있는 행동으로 재정의하였다.
*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2012, 23쪽
이런 기발한 대회를 만든 장본인은 작가 웁쓰양이다.웁쓰양은 회화,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품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이다.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 매체가 변화하고 시간이 지나도 작품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는 것, 또 거기서 그치지 않고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소통하려는 노력을 지속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웁쓰양은 그 매체마다 다른 방식으로 작품 속에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담아 관람자와 소통한다. 이런 작가의 소통 방식을 크게 회화작품과 퍼포먼스로 나누어 알아보고자 한다.
[오류가 담긴 캔버스]
작가의 개인전《한 시대가 무심코 지나간다》(2012)의 대표작품들을 살펴보면 작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실제로 있었던, 혹은 있을법한 사회적 문제들을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와 똑같이 재현하지 않고 ‘의도적인 오류’를 함께 담았다. 이 오류는 컴퓨터 구동 중 빈번하게 경험할 수 있는 ‘렉’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렉은 컴퓨터가 일시적으로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는 상황이거나 컴퓨터의 사양이 이미지를 담아내지 못할 때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컴퓨터가 미디어를 불러오다 오류가 발생했을 때,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지기도 하고, 픽셀이 뒤엉킨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작가는 회화 작품에 이런 뭉개진 이미지, 뒤틀린 형상을 함께 그렸다. 즉, 작가는 작품을 담는 캔버스 자체를 사회로 설정하고, 그 안에 사회문제를 ‘렉’과 같은 형식으로 회화 안에 담아낸 것이다. 마치 사양이 낮아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담아내지 못하는 컴퓨터처럼, 사회 범죄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오류로 보이는 ‘무언가’ 때문일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이때 관람자는 의도치 않은 이 오류를 마주하고, 그 이미지 전달 오류로 온전한 정보를 받지 못해 부분적인 정보만 얻는다. 작품의 제목이 직관적이기 때문에 회화적인 오류가 없다면 관람자들은 완벽하게 전달된 이미지를 수용하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강제적으로 오류를 삽입하였고, 관람자들은 이 오류를 통해 정보가 누락된 이미지를 전달받는다. 회화작품이지만 관람자에게 일방적으로 완벽한 작품을 주기보다,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질문은 던져준다는 점에서 관람자와 소통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회화에 자신의 생각을 담고 더 나아가 관람자에게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주는 방식으로 독특하게 자신만의 소통을 이어간다.
[관람자가 완성하는 웁쓰양의 퍼포먼스]
회화작품에서 작가가 관람자에게 오류를 매개로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그쳤다면, 나아가 웁쓰양의 퍼포먼스는 관람자가 직접 작품을 완성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멍때리기 대회》(2014)와 《고등어를 사려다 그림을 사다 : 웁쓰양 거리그림展》(2010)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두 퍼포먼스는 관람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멍때리기 대회》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를 한 명이 아닌 다수의 사람이 함께하여 그 쓸데없는 행위 ‘멍 때리기’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견고히 다져낸다. 가치 없다고 치부되는 멍 때리기에 가치를 부여해 가치 있고 필요한, 필수적인 행위로 변화시킨 것이다. 또한 《거리그림 展》은 작가가 직접 재래시장 거리에서 그림을 파는 퍼포먼스로 관람자의 구매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매일경제, 피로사회 사는 현대인에게 명약은 ‘멍 때림’... ‘멍 때리기’필요해진 번아웃 사회 인터뷰 중, 출처: https://bit.ly/3eV7PRZ
이 두 퍼포먼스는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미학 관점에서 볼 때, 참여적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여적 예술 작품에서는 작가뿐만 아니라 관람자 또한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관람자는 완벽하게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수동적인 존재에서 작품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존재로 변화한다. 이 참여 예술은 ‘실제적 개입에 의한 참여’와 ‘예술을 넘어선 사회로의 확장’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는데, 웁쓰양의 퍼포먼스는 ‘실제적 개입에 의한 참여’에 속한다. 이 유형은 비예술가 사용자를 개입시키는 구조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작품에 개입시키거나 참여자가 예술작품 일부를 이루게 하고 작품에 참여하도록 한다.* 이 이론을 대입하여 두 퍼포먼스를 분석해보면 작가는 나이, 직업에 제한을 두지 않고 참가자를 모집 받았으며 시장에서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의 행인에게 그림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비예술가’를 작품에 개입시켰다. 관람자를 작품에 개입시켜 결과적으로 참여하는 이들, 지켜보는 이들도 ‘멍때리는 행위’의 순기능에 대하여 직접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고 딱딱한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나 관람자가 더욱 쉽게 그림을 감상하고 구매하는 방식으로 미술의 틈을 좁히려고 노력했다. 관람객을 작품에 개입시켰다는 점, 참여한 관람자가 불특정 다수의 비예술가라는 점에서 작가의 퍼포먼스는 ‘참여적 예술 작품’에 부합한다. 회화작품은 관람자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작가는 회화작업에 가장 적당한 ‘간접적 소통’을 하였고, 비교적 소통이 자유롭게 가능한 퍼포먼스에서는 관람자를 작품에 참여시켜 ‘참여적 예술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매체에 따라 그 방식은 조금 변하였지만, 관람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작가의 노력은 변함없어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웁쓰양는 본인 스스로 어떤 작가라고 정의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넓은 작업 반경 때문에 어떤 예술가인지 정의하기가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 질문에 웁쓰양은 매체는 작가에게 그저 ‘도구’라며, 자신은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에 쉬운 매체를 선택하여 이용하고 그 자체를 즐긴다*는 현명한 답을 내린다. 작가는 꾸준히 사회 문제를 작품 속에 넣어 사회 문제를 제시하고 변화시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웁쓰양의 이 대답은 앞으로도 작품의 각 매체의 특성을 살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작품과 관람자의 소통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작가가 이후에 또 어떠한 매체를 통해 어떤 기발한 생각을 표현해내고, 어떠한 방식의 소통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 기대하게 만드는 답이기도 하다.
*조사라, 「한국프랑스학논집99-니콜라 부리오의 관계미학 관점에서 본 1990년대 이후 국제미술전 비평 연구」, 『한국프랑스학회』, 2017, 293쪽
*조사라, 위의 글, 293쪽
*이화여대 국문과 13학번 김다혜씨와 나눈 서면 인터뷰 중, 웁쓰양 블로그 출처:http://bitly.kr/dshBPngOF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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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영 | 독어독문학과와 박물관학을 졸업했다. 커뮤니티아트에 관심이 있으며, 어떻게 하면 전시와 관객의 틈이 좁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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