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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큐레이터 양성 및 지원프로그램 <이제 막 큐레이터>

2020-07-25(Sat) ~ 2020-09-05(Sat) 이제 막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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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행사 소개

미끄러짐, 그 찰나에 스며 나오는 - 전병구 작품을 중심으로

박성환

전병구가 캔버스에 붓으로 써 내려간 기록은 마치 심연처럼 고요하고 뭉근한 뉘앙스로 그 잔상을 전달한다. 잔상은 하나의 대상으로 읽힌 외부 자극이고, 사라지고도 그 감각이 지속하여 남아있는 상태다. 이는 또렷하게 읽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새로운 사유를 유발하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전병구, <무제>, oil on canvas, 31.8×40.9cm, 2018

그는 보통의 나날에서 마주하는 장면과 대상들을 캔버스에 건져낸다. 작업은 어떠한 맥락에서 한 토막을 가져온 듯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는 주변에 존재하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고 흘려보낸 존재와 순간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그는 하나의 이름이 되지 못한 것들을 회화의 방식으로 되새긴다.

그의 기법은 화면을 채워 넣기보다는 비워내는 태도로 표면에 접근하고, 또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일 혹은 대상을 선택한 바로 그때를 주목한다. 재빠르게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그 순간을 증명한다. 영원하지 않은 순간에 대해 작가는 재현의 억압에 갇히기보다는 존재의 불완전성을 인지하고, 내적 자율성에 집중하여 세계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작가가 수집한 이미지는 비교적 맑게 표현된 형상 위에 미끄러운 붓의 질감을 덧입는다. 지글지글하게 파열된 이미지는 얄팍하고 불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시선을 형상에만 집중시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계속 유동하며 화면 전반을 골고루 조망케 한다. 작업에 부유하는 모호함과 표현의 균일함으로 서정적인 감각을 경험한다.

작가는 형태적 질서를 기반으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재현을 단절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작업에서 발생된 단절은 실재와 가상 간 경계가 모호해진 상태에서 일어난다. 작가는 이렇게 발생한 단절을 기존의 묘사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표현하는 행위로 활용하며 표면에 일종의 패턴들을 만들어낸다. 분절된 맥락은 여러 작업으로 나열되면서 작업 간 새로운 내러티브를 생성한다.

나는 그의 그림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미적 경험의 과정을 미끄러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그림은 세상의 표면을 살며시 떠내고 흐릿하게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시간과 기억이라는 휘발하는 요소에 의해 이미지들은 걸러지고 서사도 함께 미끄러진다. 그 찰나에 스며 나오는 투명한 내비침에서 유동하는 맥락이 발생한다.

전병구, <Baseball Stadium>, oil on canvas, 27.3×40.9cm, 2017

작가의 시선은 캔버스를 매개로 현실을 응시하고, 잔상은 규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층적으로 드러난다. 전병구는 형상을 전형적으로 옮긴다기보다는 이미지를 일시적으로 소환하는 방식으로 작가는 세계를 감각하기를 시도한다. 관람자는 나름의 연상 체계를 활용하여 작가의 기록에서부터 출발하여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간다. 이렇듯 그림은 두 주체 사이에 작동하는 동시적 움직임에 의해 추상적 접근을 가능케 하고, 그는 무의미함과 비정형을 즐기며 차분히 자신만의 프레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박성환 | 광고홍보학과 회화를 공부했다. 아르코미술관, 일민미술관을 거쳐 현재 복합매체 기반의 동시대 예술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미디어에서 생성되는 이미지를 재조립하고 다시 내놓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