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5(Sat) ~ 2020-09-05(Sat)
C 공연장
두 개의 전시 《안에서 본 풍경》(OCI 미술관, 2016), 《물수제비》 (아트스페이스보안, 2019)를 통해 바라본 임노식 작가의 작품론
한주옥
4년 전 임노식 개인전《안에서 본 풍경》(OCI 미술관, 2016)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보며 나는 그가 풍경을 그저 잘 그린다고만 생각했다. 특히 반복적으로 그리는 일상의 풍경은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기록하기 위한 미학적 판단이었을 것으로 이해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원색 계열이 제외된 채색 기법과 마티에르 없는 얇은 표면의 담백한 표현은 임노식 회화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특징인데 이러한 특징들 때문인지 그가 터득한 매체의 활용 방식과 그 방식으로부터 착안한 태도에 집중한 작업으로만 바라봤던 것 같다. 그러나 “안에서 밖을 보거나 또는 밖에서 안을 바라볼 때 ‘안과 밖’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서서 (그) 전경을 그리고 싶다.”는 인터뷰에서의 언급은 단순히 특정 장소에 관한 관심과 공감으로 풍경을 재현한다기보다 스스로 경계의 지점을 설정하며 ―여기서 안에서 밖을 보거나, 밖에서 안을 보거나, 안에서 안을 보거나, 밖에서 밖을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주체의 방식으로 설정된 경계 그리고 여기서 비롯되는 여러 이분법적 관계망을 고찰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2016년 목장을 풍경으로 한 시리즈 <Milking Parlor_2>, <Milking Parlor_3>, <Self-regulation cattle bowl_1>(2016) 작업은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목장 안 곳곳의 시설과 공간을 재현한 작업이다. 캔버스는 마치 이 세계를 포착해야 하는 카메라 프레임이 되어 서사가 정지된 듯 무미건조한 장면을 화면에 옮긴다. 여기에 흑과 백의 명암 표현, 밝음과 어둠에 몰두한 화면 구성, 공간의 구획을 지시하는 울타리와 같은 집중된 대상의 표현은 목장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의미를 덜어내는 시도이자 그가 목장 곳곳에서 느꼈던 인간 주체에 대한 반성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중적 구조의 문제들을 가리키며 매개한다. 따라서 임노식의 작업은 어디서 많이 본 장면과도 같은 풍경의 조건을 이루지만 그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와 함께 견고하게 고정된 풍경의 의미는 튕겨져 나오며 또 다른 인지의 출현 가능성을 촉발한다.
임노식의 ‘경계’에 대한 탐구는 자신의 관념에 자리 잡은 구조를 이미지로 전환하려는 시도와 더불어 그의 수행적 함의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그 정체를 모색한다. 즉 기존 회화 작업이 경계를 지시하는 이분법적 요소와 실재와 상상의 사이를 오가는 데 주목했다면, 또 다른 시도로 보이는 최근 작업은 캔버스 안에 존재했던 회화의 현존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을 인지적으로 타격하며 밖으로 나오는 수순을 전제한다. 2019년 아트스페이스 보안에서의 《물수제비》(Pebble skipping) 전시에 설치된 작업 <Branch630>(2019), <Canvas 03>(2019), <Floating 01-08>(2020)은 앞서 언급한 “관점에 따라 안과 밖이 또는 입구와 출구의 의미가 상대적일 수 있다”는 언급을 토대로 작품을 바라보는 약속된 시선의 방향을 조금씩 탈각시키며 관객에게 열려있는 관점을 공유한다. 따라서 전시 공간의 곳곳의 영역으로 펼쳐나가는 임노식의 제스쳐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회화적 시도가 된다.
당시 선보였던 작품 <Branch630>(2019), <Floating 01-08>(2020)을 살펴보면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우거나 바닥과 천장을 잇는 기둥으로 임의의 영역을 만든다. 이는 단순히 작업의 물리적 확장을 넘어서 과거 ―캔버스―와 현재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전시 공간 ―벽, 기둥 ―을 활용한 회화 체계의 증식으로서 경계에 대한 그의 의문과 개념을 연장하게 한다. 이를 통한 시도는 더욱 넓고 열린 형태로 관객에게 공유되는데 예를 들어 관객은 작가의 시점으로 바라본 풍경을 감상했다고 인식하지만, 전시장 밖을 나갈 때쯤에는 공간 내 조건을 상기하게 한다. 최근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경계에 대한 함축된 관념과 개념을 벗어나 표현의 자유로움을 터득한 듯 보인다. <Solmi road01-04> (2019), <Workroom01> (2019) 과 같은 작업은 하나의 화면 안에 의식적으로 또는 우연히 여러 화면을 소환하거나 중첩시켜 독특한 보기 방식의 제안한다.
인트로 격이 된 목장 시리즈로 돌아가 보자, ‘탈출을 시도했지만,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 소에게’, ‘그 장면을 묵묵히 바라보는 작가에게’ 목장은 구원 없는 장소이자 자유를 중개하는 중간 기저로 작용한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그 광경과 대상은 화면에서 끊임없이 상호보완하며 확신에 찬 듯 뚜렷해진다. 처음 임노식의 풍경을 접했을 당시 그저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말풍선들을, 그는 작업을 전개해나가는 여정에 있어 이미 예견했을 것이다.
한주옥 | 미술학과 회화전공으로 석사 졸업하였으며 현 미학과 재학 중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코디네이터, 자하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하였다. 퍼포먼스 미학을 중심으로 뉴 매체와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발전 가능성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