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한국 현대 미술의 ‘구수한 큰 맛’

한주옥

우리나라의 대표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로 꼽히는 우현 고유섭은 1905년 인천시 용동(용리)에서 태어나 1925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 입학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였다.1) 그는 한국 전통 미술에 대한 방법론을 연구하며 근대 학문체계의 설립에 힘썼으며 자칫 선진미술의 이데올로기에 좌지우지되기 쉬운 한국 미술의 현장에 자생적 조형언어를 가능하게 하였다. 초창기 고유섭은 미에 대한 견해를 『우리의 미술과 공예』(1934)의 서두에서 밝힌다. “미라는 것은 생활에 따라서 양식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르고 그 변용이 다른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한 시대의 양식이란 아무리 개별적인 것이라 해도 작가의 단독으로 어디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속해있는 사회공동체, 문화전통의 소산이기 때문에 그 사고방식이나 미감각, 그 형태 또는 표현방식은 눈에 안 보이게 그러한 사회·문화배경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2) 고유섭은 한국미술의 전통적 성격이라는 것은 시대적 변천, 문화의 교류에 따른 변천을 통하여 흘러 내려오는 사이에 형성되었고 이것은 시대가 경과함에 따라 변천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구체화되어짐을 언급한다. 그는 사회·문화배경과 연결되어 있을 한국미술의 전통적 성격을 ‘무기교의 기교(무계획의 계획’, ‘민예’적인 것, ‘비정제성’(비균제성),‘구수한 큰 맛’등으로 칭하며 미술의 내용이 되는 건축, 회화, 조각, 그리고 공예등을 나누어 한국 미의 특징을 논한다. 특히 “구수한 특질” 즉 ‘구수한 큰 맛’3)이라 표현한 한국미의 특징은 한국 미술의 조형 이념의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과거 전통 미술의 왜곡된 계승 자세를 수정하도록 하였다. 고유섭이 언급한 ‘구수한 큰 맛’은 무엇일까?

‘구수’ 하다는 것은 순박 순후한 데서 오는 큰 맛이요, 예리하고 모나고 찬 이러한 데서는 오지 않는 맛이다. 그것은 깊이에 있어 입체적으로 쌓여 있는 맛이며, 속도에 있어 빠른 것과 반대되는 완만한 데서 오는 맛이다. 따라서 얄상 궂고 잔박하고 경망하고 꾀부리는 점은 없다. 이러한 맛은 신라의 모든 미술품에서 현저히 느낄 수 있는 맛이지만, 그러나 조선미술 전반에서 느끼는 맛이다. (...) 이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고수’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적은 것으로의 응결된 감정이니, 예컨대 조선백자의 색조 같은데서 그 구체적인 일반 예를 볼 수 있다. 외면적으론 일견 단순한 하얀 한 가지 색에 불과하지만, 여러 가지 요소가 안으로 응집 동결된 특색이니, 저 ‘구수’란 맛이란 것이 내외 없이 모 없는 맛을 이루고 있는 것임에 대하여, 이것은 안으로 응집된 맛이다.4)

고유섭이 전통적 성격으로 특징 짓는 요소들은 곧 한국 사람들의 순박하고 순후한 생활의 태도에서 오는 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는 무기교에서 오는 것이다. 고유섭이 언급하는 한국 미술의 성격들은 분명 언급해야할 가치가 있으며 현재까지 연장되어져왔다. ―가령 미술 비평가 임근준은 고유섭의 ‘구수한 큰맛’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성의 변천과정을 이야기 한다. 먼저, 신사실파(1947~1950년 김환기·유영국·이규상 등이 결성)에서는 한국성의 원점이 대체로 조선시대 선비의 정신문화에 있었다고 보며 백자대호와, 달 항아리를 그 예로 들었으며, 고려 이전 한반도 문화에서 원형성을 도출하여 추상 조형을 구현한 한국식 앵포르멜과 또한 김환기, 권영우, 윤형근, 하종현이 속했던 단색화 경향을 그리고 노동 계급의 민속 문화와 무속 혹은 무속적 불교문화에서 정신성의 원형을 찾고자 했던 민족 민중 미술, 동시대 미술에서는 최정화와 박모를 예시로 든다.5)― 그렇다면 최근 작품 활동에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본다면 우리미술의 큰 특징으로 여겨지는 징후와 상징들을 어떻게 발견하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먼저 1990년대 한국미술의 특징 중 하나는 기법적인 구분이나 장르의 분유도 경계가 흐려지고, 추상과 구상의 형상을 넘나들며, 회화와 조각, 설치의 양식적인 경계도 무의미해졌다. 장르 간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산업사회의 산물을 재료로 적극 도입하거나 타 장르예술, 뉴미디어를 미술에 접목하는 등의 새로운 창작의 모색이 시도되었다.6) 이후 2000년부터 이어지는 한국 미술의 초상은 비판적 현실주의를 지향하며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 하였고, 2000년대 중반 청년 작가들은 대안공간을 위주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격변기로 접어든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신진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아트페어 형식으로 전개된《굿-즈》, 신생공간의 문제의식과 그 외연을 확장시킨《서울바벨》등 주요 전시가 있어 왔다. 그리고 스마트폰과 SNS를 통한 미디어의 파급효과를 중심으로 점점 더 확장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하며, 이는 곧 자신들의 표현 조건으로 작동, 변환한 작업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특정 국가나 민족의 역사를 다룰 때 미술사의 이론과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져한다. 특정한 역사철학이나 역사관이 개입되어서는 결과적으로 정확한 미술사가 될 수 없으며 미술사로서의 자격도 상실하게 되곡 주관적, 편파적인 미술평론이나 선전문이 되고 만다.7) 고유섭이 말한 전통적 성격이라 규정하는 특징은 현재까지도 한국적 미를 규정하는 논제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각에서 벗어나. 현재 생활과 태도가 어떻게 변천되어 나타날지는 현 한국 미술을 중심으로 일부 제기되는 논의점과 빠르게 움직이는 흐름을 적극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1) 김영애, 「美術史家 高裕燮에 대한 考察」, 동국대학교 미술사학, 석사, 1989, p.7 참고

2) 김원용, 『한국 고미술의 이해』,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p.7

3) 최진희, 「고유섭의 한국건축미학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1992, p.77

4) 고유섭, 『구수한 큰 맛』, 1999, p.19

5) 임근준, "구수한 큰 맛"과 한국성의 변환, <임근준 블로그: http://chungwoo.egloos.com/4187058>, 2020.08.09, 참고

6) 윤난지 외, 『한국 동시대 미술 : 1990년 이후』, 2017, pp.124-125 참고

7) 위의 책. p.9 참고

한주옥 | 미술학과 회화전공으로 석사 졸업하였으며 현 미학과 재학 중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코디네이터, 자하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하였다. 퍼포먼스 미학을 중심으로 뉴 매체와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발전 가능성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