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1(Sat) ~ 2020-10-31(Sat)
C 공연장
무료
032)760-1017
곱씹어 느끼는 조화로운 멋
― 우현 고유섭의 구수한 큰맛을 읽고
황소영
1. 서론
우현 고유섭(1905-1944)은 일제 암흑시대를 살다간 한국 최초의 미학자이자 미술사학자였다. 그는 '선미술사'를 기술하는 일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1) 그 당시 일본학자들의 조선학 연구가 순수한 학문적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정책의 차원에서 시도되었는데,2)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그는 조선미술에 나타난 미의식을 규명하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현재까지도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조선의 미술을 무엇이라 정의하였을까? 본 글에서는 우현 고유섭의 구수한 큰맛을 해석해보고자 한다.
2. 구수한 큰맛이란?
그는 조선의 미술을 '구수한 큰맛'3)이라 정의했으며 전통적 성격이라 할 만한 특색을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무관심성' 등의 개념어로 정의했다. 그가 정의한 '구수한 큰맛',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무관심성' 등은 주로 그 의미가 서로 반대되는 단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 번 읽고서는 그 의미가 단번에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뜻을 알아채면 어떠한 개념보다 더욱 잘 어울리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고유섭이 정의한 조선미술을 새로운 대치어로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조화로운 멋'이다. 조선에서는 그것이 예술이던, 정원을 가꾸는 일이던 결과물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본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았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본모습 그 상태로 사용하기를 선호했다. 정원을 장식할 돌은 따로 가공하지 않았으며, 식물 또한 자라는 그대로 심었고 따로 깎아내거나 그 형태를 다듬어 손질하지 않았다. 즉, 하나의 결과물에 맞추려 사물들을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형태를 존중하며 각자의 형태가 모여 조화로움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조선미술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는 것이다.4) 이런 '조화로운 멋'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것들이 서로 동화되고, 조화되어 잘 어우러지기 때문에 단번에 그 진가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어느 하나가 나서서 튀거나 특정 대상의 아름다움을 뽐내려 다른 것을 들러리 세우지 않고 서로 조화롭게 동화되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화로운 멋‘을 느끼기 위해서는 곱씹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선의 미술은 철저한 계획보다는 자연스러움이 강조되어 자칫하면 멋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예술성이 뛰어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의 미술은 그 의미가 단번에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곱씹고 곱씹어야만 진정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조화로운 맛을 곱씹다보면, 조화로움에 숨겨져 있던 각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그 후 그 맛을 생각할 때 비로소 큰 맛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는 곱씹는 과정이 생략된다면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기교 높은 예술작품이어도 예술적 발양을 얻지 못해 헐겁거나 변통성 없고 엉겨 붙은 것이 된다고 지적하였다.5)
고유섭의 이런 구수한 큰맛, 조화로운 멋을 잘 담고 있는 현대의 예술가를 뽑아보자면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판소리 밴드 '이날치'를 예로 들 수 있다. 밴드 이날치는 소리꾼 네 명과 드럼, 기타 베이스로 이루어진 밴드로 구전으로 내려오는 우리 소리인 국악과 팝을 섞어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었다. 이 밴드는 자칫 생소하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팝, 밴드 장르와 국악을 융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국악과 팝이 섞인 음악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마치 원래 있던 하나의 노래처럼 들리는 것이 큰 특징이다. 밴드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악기가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듯 튀거나, 국악의 우수함을 자랑하기 위해 팝을 들러리로 세운 것이 아니라 두 음악이 서로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것이 고유섭의 '구수한 큰맛', '조화로운 멋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마치며
본 글에서는 '구수한 큰맛'에 대한 대치어를 '조화로운 맛'으로 정의하였다. 자극적인 맛은 한 번에 사람을 이끌지만 반대로 조화로움을 우선시하는 맛은 곱씹는 과정을 거쳐 각각의 재료의 맛을 느끼게 되어 그 끝에 가서야 진가를 맛볼 수 있다. 그 예술성이 단번에 드러나는 작품도 가치가 있지만,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멋에서 피어나는 조화로움, 그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 멋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 고유의 우수한 특성이다. 이 멋이야 말로 진정 질리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시대의 변천에도 변화되지 않는 우리 고유의 성질과 특성일 것이다.6)
1)김명숙, 「고유섭의 한국미학, 미술사학 제 해석」, 『예술논집』, 2015, P.89
2)김영나, 「한국미술사의 태두 고유섭: 그의 역할과 위치」, 『미술사연구』, 2002, P.507
3)고유섭, 『구수한 큰맛 – 우현 고유섭 선생의 한국미술사 연구』, 다할미디어, 2005, P.52
4)고유섭, 위의 책, 다할미디어, 2005, P.143
5)고유섭, 『구수한 큰맛 – 우현 고유섭 선생의 한국미술사 연구』, 다할미디어, 2005, P.20 참조
6)고유섭, 위의 책, 다할미디어, 2005, P.54
황소영 | 학사로 독어독문학과와 박물관학과를 졸업했다. 커뮤니티아트에 관심이 있으며, 어떻게 하면 전시장과 관객의 틈이 좁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