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2(Fri) ~ 2017-07-09(Sun)
12:00 - 18:00, 월요일 휴관
B 전시장1 인천아트플랫폼 H동 2층 다목적실
인천아트플랫폼은 입주예술가들의 실험적이고 유의미한 프로젝트 창작을 지원해오고 있다. 올해는 인천의 역사성, 장소성, 쟁점 등을 소재로 한 5팀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제보>展은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시민들로부터 창작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참여자를 모집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밖으로 꺼내어 보여준다는 의미를 가진 ‘전시(exhibition)’는 주로 완결성을 가진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다. 아쉽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완성된 작품을 볼 수가 없다. 내면을 요동치게 하고, 눈물을 빼앗고, 뇌를 쫄깃하게 하는 작품, 0.1mm의 오차와 미세한 색온도의 차이를 허용치 않으며 반듯하게 설치된 모습도 볼 수 없다. 그러나 관객의 제보와 참여는 작품 없이 텅 빈 화이트 큐브 안에 작품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출간되기까지 여러 분야의 조력자들이 노고하듯, 예술 작품도 수집과 기록, 검증 등의 과정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차곡차곡 쌓일 때, 비로소 단단한 내공과 완성도를 갖게 된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제보를 통해 창작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함께 진행해야할 프로젝트라면 참여를 권할 것이다.
금혜원은 외할머니의 유품인 8권의 노트에서 영감을 받아 프로젝트 ‘다시쓰기 ; 기억의 조우와 연대’를 시작하게 되었다. 작가는 할머니의 노트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과 전쟁 등의 불안정한 시대 상황으로 끊임없이 이주와 정착을 반복하며 살아온 한 여성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역사적 사료로 활용 가능한 사실일 수도 있고, 할머니의 당시 감정적 기우가 담긴 글일 수도 있다. 작가는 할머니의 흔적들을 남겨진 역사 자료와 생존자의 경험담, 지인들의 구전 등을 통해 보다 세밀하고 깊게 추적하고자 한다. 그것을 재조명하고 예술적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와 어떻게 연속해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작가는 외할머니의 경험을 추적하기 위해 일기에 기록된 시대 상황과 관련된 구전, 사진이나 물건 등을 수집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을 전후로 인천에 정착하며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월남의 경험 혹은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삶의 변화를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 떠나온 고향의 기억과 두고 온 것들 등에 관한 이야기를 기다린다(keumhw@gmail.com). 작가가 직접 수집하거나 관객들로부터 수집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들은 작업의 주요 소재가 될 것이며, 이 자료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구성되어 작품으로 선보여질 것이다.
전자음악가 박승순은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풍경 이미지에 적합한 소리를 자동으로 재생시키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인천의 풍경과 소리 데이터를 채집하기 전에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풍경의 소리를 잘 구별할 수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소리/풍경 인지능력 평가(SLCAT: Sound/Landscape Cognitive Ability Test)’를(https://goo.gl/gXEeof) 진행할 예정이다. 특정 풍경에서 녹음한 실제 사운드는 사람들의 경험과 감각으로 매칭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길을 걸으며 눈으로 풍경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는 것은 공감각적 능력이며, 동시에 작동된다. 그러므로 특정 장소에서는 소리만 들어도, 보기만 해도, 냄새를 맡기만 해도 장소의 명칭과 기능, 상황 등을 맞출 수 있다. 그러나 그 감각들을 분리시켜 놨을 때에는 ‘낯선’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작가는 특정 풍경 이미지 또는 장소의 명칭과 현장의 소리를 분리시킨 뒤, 관객들로 하여금 매칭하도록 하는 테스트 시스템을 마련하였다. 작가는 관객들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람들이 이미지를 보고 인식하게 되는 연관 키워드가 컴퓨터가 추론하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예측하지 못할 검증은 이 프로젝트를 창작하는데 고민과 힘을 가져다 줄 것이다.
서영주는 ‘오아시스 카페’를 마련하여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공연을 주축으로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며 창작해오고 있는 서영주는 현재 몸짓 워크숍(몸으로 말하는 움직임)을 진행 중이다. 현재는 몸을 움직이는 다양한 방법(기술)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기술을 알려주는 워크숍이 끝난 뒤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해볼 예정이다. 작가는 이야기의 주제를 ‘오아시스’로 정하였다. 오아시스 카페에서 사람들은 쉬어가며 일상, 꿈, 사랑, 일터 등에 관한 자유로운 주제로 하얀 벽 위에 자작시를 남길 수 있고, 테이블 위의 녹음기에 읊조리는 시 한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차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 등을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남겨놓은 반짝이는 시와 이야기는 앞으로 진행할 몸짓 워크숍의 소재가 되어 몸으로 표현될 것이다.
정혜정은 개인과 세상 사이에 생기는 틈새와 균열을 찾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인천아트플랫폼 작업실 내부의 공간에 주변의 다양한 장소들을 불러들여와 안과 밖을 연결시키고 확장시키는 실험 ‘바깥의 바깥’을 진행한다. 작업실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볼 때면 앞에 있던 많은 관광객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몰려와서 사진을 찍고 사라지곤 했다. 화려하고 붉게 장식된 중국풍 건물들로 가득한 차이나타운, 개항기 잔해인 일본식 건축물, 항구 인근 시내의 네온사인, 알 수 없는 냄새의 국적불명의 음식들로 가득 찬 신포시장의 풍경은 마치 커다란 영화세트장과도 같았다. 과거의 남겨진 흔적과 현재의 새롭게 덧대진 것들이 만든 풍경 속에서 작가는 궁금하다. 관광객처럼 잠시 사진을 찍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점유하며 이곳을 변하게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작가는 인천 중구 일대 장소(주민들이 모여있는 곳, 무대처럼 느껴지는 곳 등)와 사람(화교, 토박이 주민, 관광객 등), 일상적인 대화를 관객들로부터 제보 받고자 한다. 즉 작가는 이곳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고, 이미지와 대화 소리를 수집한다. 사람들로부터 수집한 장소, 사람, 대화 등의 자료는 늦가을에 작가의 2층 작업실에서 또 다른 풍경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사람들은 야외에 설치된 계단을 타고 작가의 2층 작업실로 슬금슬금 올라와 창가에 기대어 창밖의 풍경을 실내에서 바라보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연구자들로 구성된 F동 사람들은 현대미술 팟캐스트 ‘본격미술극장’을 진행한다. F동 사람들은 현대미술에 시민들이 관심 가질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팟캐스트 플랫폼을 마련한다. 연구자들은 인천의 미술현장과 쟁점들로 방송을 구성하여 지역의 미술과 동시대 미술의 연계 가능성을 연구할 것이다. 우선 이번 제보 전시에서는 현대미술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를 이해해본다. 전시장의 흰 벽 위에는 연구자들이 현대미술에 대한 세 가지의 물음을 제시하며, 관객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비워진 칸에 채워 넣을 수 있다. 또한 현대미술을 접하며 경험하였던 사연과 의문점 등을 엽서로 제보 받으며, 도출된 이야기들은 앞으로 진행될 팟캐스트의 일부 소재가 될 예정이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매주 토요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도슨트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도슨트는 작품이 없는 공간에서 관객들에게 과연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 관객이 ‘본격미술극장’의 전시 구역에 발을 딛는 순간 도슨트는 다가갈 것이다. F동 사람들은 이번 전시에서 현대미술을 소재로 여러 사람들에게 만남을 권할 것이고, 이후에는 미술에 대해 시들시들한 시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관심가질 수 있도록 팟캐스트를 본격 진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