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련은 동양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대에 재현되는 동양풍 이미지의 양상과 그것이 소비되는 방식을 지켜보며 그림을 그린다. 작가는 근대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낡고 이상한 것으로 치부되는 ‘동양적’인 것들을 반쯤은 의심하면서도 좋아하고, 그것의 효용을 다시금 상상해본다. 동북아시아가 공유하는 전통적인 클리셰 이미지를 바탕으로 비애, 여성, 현실과의 괴리, 내면의 오리엔탈리즘, 의심, 무지와 부조리 등을 그려내고자 한다.
최근에는 ‹태평녀› 연작과 더불어 한자보다 ‘한글이 더 익숙한 세대를 위한’ 필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태평광기』나 『요재지이』 등의 고전 설화 속 기존의 권선징악적 서사 구조와 맞지 않는 황망하고 짧은 이야기나, 70-80년대에 유행했던 도사와 귀신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 중에서 귀신의/귀신에 관한/귀신을 향한 발화 등을 수집하여, 한자 원문과 영어 혹은 한글 해석을 병치하는 작업이다. 텍스트를 수집하고 번역을 대조해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부하는 듯한 제스처’와 마치 처음 그림을 그리는 사람처럼 뭔가를 다듬어나가는 행위인 습자/습화의 흔적을 작품 내 포함시키는 회화작업을 계속해서 연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