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기 서해영 그룹전] 소마 인사이트_지독한 노동展
2016-03-18(Fri) ~ 2016-05-29(Sun)
소마미술관
기간_ 2016년 3월 18일(금) ~ 5월 29일(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2016.03.17.17:00pm. 로비
참여작가_ 배윤환,서해영,송광익,유봉상,이세경, 임선이,정원철,정재철,한영욱
주최_ 국민체육진흥공단
장소_소마미술관
SEOUL OLYMPIC MUSEUM OF ART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424(방이동 88-2번지) 올림픽공원 남3문 전관
Tel. +82.2.425.1077 www.somamuseum.org
2016년, 소마미술관은 "'몸'을 매개로 하여 예술과 삶의 관계를 조망하는 미술관"이란 미션을 품고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려 한다. "사유와 행위의 주체이자 객체인 '몸'과 그에 투영된 동시대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는 일이 곧 미술관의 비전이 될 것이다. 새로운 미션과 비전을 설정하는 것은 그동안 미술관이 열어 놓은 가능성의 샛길들을 한 방향으로 수렴할 대로(大路)를 설계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행로였고, 장장 8개월의 산고(産苦) 끝에야 어지럽게 펼쳐져 있던 갈림길을 겨우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이제 그 대로를 탄탄하게 건설하기 위해 흙 한 줌, 돌 하나도 정성스럽게 고르고 닦을 차례이다. 10년 전, 소마미술관으로 개명하여 재개관하면서 소마드로잉센터를 발족했던 일만큼이나 모험적인 실험일 수도 있겠지만 미술관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길이 어찌 험난하지 않겠냐는 각오로 힘차게 운을 떼어본다. 이에 '소마 인사이트 : 지독한 노동(SOMA Insight : The Great Labour)'은 앞으로 울려 퍼질 교향곡의 서막이라 할 수 있겠다. ● '소마 인사이트'는 그동안 '작가 재조명'이란 제목으로 진행했던 정기 기획의 취지를 이어 가되, 소마미술관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시의적절한 주제로 '작가 정신'을 더욱 폭넓게 다각도로 조명해 보고자 신설한 기획전이다. 그 첫 번째로 '지독한 노동'은 작업에 있어 노동성과 수행성(修行性)에 주목하였다. 여기서 '작업(work)'이란 보통 예술가들의 신체적․정신적 활동을 의미하며, 그 과정과 결과물까지 통칭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행위들이 쌓이고 쌓여 그 과정들의 흔적이 되는 작업, 압도적으로 거대하거나 미세한 규모의 작업,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는 말로 모든 고통을 대변하는 극한의 작업 등 이번 전시에서는 오랜 시간의 신체적․정신적 노동의 결과물로서의 작품 또는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준비, 조사, 수집, 기록 등 지난한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요컨대, 노동을 통한 몸과 정신의 일체과정으로서의 작업, 수공(手工)을 통한 시각예술의 근간에 대한 천착, 반복과 수행을 바탕으로 한 비합리적 목적성의 예술행위 등, 그 지독한 노동을 통해 작가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예술과 삶'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고자 한다. ● 흔히 예술가에 대한 편견은 '개미와 베짱이' 우화에 나오는 베짱이처럼 생산성과는 무관한 '놀이'만 하다 굶어죽도록 현실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작업(work)'이란 말은 상품을 만드는 행위로서의 '노동(labour)'과 예술작품을 만드는 행위를 구별하기 위해 예술가 스스로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예술가들의 활동이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시간 단위로 환원이 가능한 부과된 업무'로서의 노동과는 다른, 시간으로 그 값을 측정할 수 없는 자율적인 활동이라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다. 예술가들은 무엇을 위해 작업에 그토록 열중하는 것일까? 분명 일반적인 의미의 노동과 생산이란 차원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대가가 주어지기에 작가는 오히려 돈을 주며 강요한대도 선뜻 행하기 힘든 고난도의 노동도 불사하는 것이리라. 다시 말해, 작업에는 단순히 물적 가치의 교환대상으로 정의할 수 없는 '+α'가 존재하고 작가는 자신의 창조적 세계를 견고하게 하는 이 무언가를 찾고자 어떠한 노동과 수고도 감수하려 한다. ■ 정나영
□ 1층 로비 송광익은 오랫동안 한지 작업만을 고수하며 노동과 시간으로 빚은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한지가 만들어지는 정성과 과정에 보태어, 수백, 수천 장의 한지를 물들이고 찢고 자르고 접고 붙이는 무수히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묵묵히 수행하듯 혼자만의 시간을 작업으로 승화시킨다. 본디 회화를 전공한 작가지만, 그리는 것보다는 만드는 작업에 더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평생을 한 눈 팔지 않고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것은 축복이기도 한 반면 끊임없이 유혹을 떨쳐내야 하는 고행의 길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물(紙物)」 시리즈 중 하나를 선보이는데, 폭 4m, 높이 7m 크기의 대형 설치 작업으로 한지의 물성을 독특한 방식으로 조형화한 것이 특징이다. 부연하자면, 졸대로 종이뭉치를 고정하는 파일과 같은 방식으로 한지다발의 한 쪽 날을 나무 막대 사이에 꽂아 벽에 고정시킴으로써 고정되지 않은 한지의 다른 면들은 중력과 공기에 의해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형태로 살아난다. □ 1 전시실 임선이는 자연과 인공물의 정보를 계량하여 수치화한 지형도를 조각 및 사진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자연은 주로 산을 다루고 있으며 산을 중심으로 인간과 문명에 대한 작가적 시각을 표출한다. 작가가 분석한 정보가 담긴 수백 장의 종이 지형도를 선 따라 오려내어 쌓아올린 구조는 포지티브(positive), 네거티브(nagative)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작가는 종이 한 장 한 장을 표시된 숫자에 맞춰 흐트러짐 없이 오로지 중력의 힘만 빌려 견고히 쌓아올린다. 종이 사이사이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두께 또한 작업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매번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불러일으킬 만큼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이 수반되는 고통스런 작업이지만, 그것이 작가의 얼굴이자 경쟁력이기에 포기할 수도 없다. 「평평한 나뉨」은 남산과 주변 지물의 지형을 본 따서 포지티브 형태의 조각으로 구현한 작업이며, 「극점」 시리즈는 운무에 가려지고 드러나는 산수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다. ● 서해영은 조각에 대한 실천적 고민을 평소에 좋아하던 등산과 접목하여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관념적 조각이 아닌 자신의 신체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 과정 중심적 조각을 하고자 하며, 그것은 '산에서 조각하기'를 통해 구체화된다. 「산에서 조각하기」는 2012년부터 시작되어 현재진행형인 장기 프로젝트로 말 그대로 직접 산에 가서 산의 봉우리, 바위, 돌멩이 등을 조각하는 작업이다. 작업과정은 배낭을 꾸리는 일부터 답사 및 재료 운반을 위한 산행, 조소와 캐스팅 작업, 과정 기록(영상, 사진 등)으로 구성된다. 하나의 조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번의 산행을 해야 하는데, 길을 헤매거나 날씨 등의 변수에 따라 더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할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의 장비와 도구를 선별하여 해가 지기 전에 등산과 조각을 완성해야 하는 제한된 신체적․시간적․환경적 조건 하에서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이 나타나며 이 과정과 결과물이 고스란히 작업으로 남게 된다.
□ 2 전시실 정원철의 '노릇노릇 프로젝트'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좀 더 시간을 많이 보내고자 궁리해낸 작가적 시도로, 자신에 부과된 갖가지 노릇 중 항상 최우선 순위였던 작가 및 교육자 노릇과 제일 뒷전으로 밀어놨던 자식노릇을 합쳐 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명사와 동사 사이의 아포리즘(aphorism)」이라는 제목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명사를 잊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동사가 생각나지 않는 증상을 보인다는 것에서 발견한 명사와 동사의 중요도에 대한 작가의 깨달음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작가는 명사가 사라진 동사적 삶은 동물적 생존을 의미하기에 동물적 생존을 넘어서기 위해선 명사가 중요함을, 그것을 위해 예술이 작동해야 함을 피력하고 있다. 노릇노릇 키트(kit)라고 명명한 콩 고르기 작업,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얻은 짤막한 글귀들은 분주한 삶의 이면에 잊고 있던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작가는 노릇노릇 프로젝트를 통해 존재의 가치를 일깨우고 삶을 지속시키는 노동의 의미와 예술가로서의 역할에 대해 환기시키고 있다. ● 정재철은 "삶이 예술이고 여행이 미술"이라는 모토(motto)를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수행하였다. 이 작업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7년에 걸쳐 진행된 실크로드 여행의 기록이자 폐현수막을 활용한 미술프로젝트이다. 총 3차에 걸쳐 서울에서 영국 런던에 이르기까지 40여 곳의 장소에서 현지인과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 대규모 작업은 미술이 과연 어디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전망하게 한다. 작가는 폐현수막 재활용이라는 과제를 던짐으로써 문화와 문화, 창작과 감상 사이의 소통구조를 형성하고 오랜 기간 동안 상호작용이 반복되도록 유도하는 수행적 과정을 통해 삶이 예술로 승화되기를 의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뉴 실크로드 프로젝트'라고 칭했던 2차 작업 「바자르(Bazaar, 시장)」를 새로운 공간 해석을 통해 보여준다. 좁은 골목, 공터를 채운 폐현수막을 재활용한 오브제, 여행하며 수집한 갖가지 물건들, 드로잉, 기록 사진 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생생한 그 삶의 현장을 전시장으로 소환한다.
□ 3전시실 이세경은 머리카락을 재료로 섬세하고 정교한 수공작업을 보여준다. 작가는 신체의 일부로서의 머리카락과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은 본질에는 차이가 없으나 전혀 다른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는데 주목했다. 머리카락의 이중적 속성처럼 상반된 인식이 공존하는 지점을 상기시킴으로써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돌아보게끔 한다. 가령, 식기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혐오스럽고 불결한 것이겠지만, 머리카락으로 문양을 새긴 이세경의 도자기는 어느 유럽 명가의 제품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자태로 이러한 선입견을 불식한다. 또한 숙련된 수공예적 기술로 완벽하고 정확하게 원형을 모방하는 작업은 원작, 모방, 차용, 독창성 등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부산물(Artists's By-products)」은 머리카락으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배출되는 부산물과 잔여물들, 그 과정의 기록, 그 결과물로 생산된 드로잉, 접시, 타일, 카펫 작품 등을 작가의 작업실 형식으로 재현하여 전시한다.
□ 4전시실 유봉상은 수 만개의 못을 화면에 촘촘히 박고 그 표면을 갈아서 마치 점묘화 같은 효과를 낸다. 최근에는 핀과 같이 가느다란 못으로 더욱 섬세한 질감을 보여준다. 단순하지만 고된 노동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금속을 연마하는 장인을 연상시키며, 무수히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수련 과정과도 같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일관되게 천착하고 있는 자연 풍경을 비롯하여 추상 작업과 최근의 한옥 작업까지 만나볼 수 있다. 어떤 주제를 다루든지 간에 그의 작업은 물성으로 먼저 다가오는데, 나무판의 표면으로부터 못의 요철로 생긴 깊이감과 빛의 반사 효과로 화면은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일렁이며 색조의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생동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을 대면하고 있노라면 명상과 관조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아마도 묵언 수행과도 같은 작가의 삶이 은연중에 묻어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 5전시실 한영욱은 사람의 얼굴, 신체를 극사실적으로 그려내는 화가이다. 그리는 방식에는 독특함이 있는데 알루미늄판에 색을 입히고 긁어내어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형태와 질감을 만들어낸다. 단순히 똑같이 그리는 것을 넘어서 피부와 땀구멍, 머리카락과 털 한 올까지 지나칠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다른 사람의 얼굴 또는 신체를 그렇게 가까이서 관찰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흔치 않은 경험이어서인지 그의 인물들에 대한 인상은 생경하기까지 하다. 현대에 나타난 극사실주의는 단순히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똑같이 묘사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표현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치열하게 실사(實寫)에 천착하는 이유는 그의 작업이 단지 손기술을 내세워 솜씨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닌 재현 너머의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언가는 그의 인물이 관람자의 마음에 던지는 알 수 없는 힘에 다름 아니다. □ 백남준 비디오 아트홀 배윤환은 「Was it a cat I saw? (내가 본 게 고양이인가?)」라는 작업을 통해 캔버스, 회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보여준다. 앞에서부터 읽으나 뒤에서부터 읽으나 동일한 회문(回文, palindrome)을 차용한 제목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작업의 성격을 압축하고 있다. 25미터의 두루마리 2개가 맞닿아 완성되는 50미터 길이의 대형 캔버스 작업을 작가는 작은 작업실에서 캔버스를 완전히 펼치지 못한 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면서 조금씩 펼쳐서 그리고 그려진 부분을 말아두기를 반복하면서 꼬박 두 달 만에 완성하였다. 구체적인 밑그림 없이 즉흥적으로 그려나간 데다 한번 그리고 나면 돌아가 볼 수도 없기에 작가조차도 아직 전체 화면을 확인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떤 논리적인 전개도 시각적 연결성도 없이 분절된 각각의 서사들은 미스터리하게 얽힌 채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완전히 펼쳐놓지 않음으로 처음과 끝을 알 수도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할 수도 없기에 그의 회화는 더욱 더 모호하고 미궁을 헤매는 듯 당혹스러움을 준다. 마치 예측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그것과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 소마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