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라는 소리
칙칙폭폭 인형극단 <길, 동무, 꿈 2014>
김해진 (공연비평가)
극장 앞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림책과 인형이 전시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사진과 함께 그 아이들을 소개하는 글도 붙어 있었다. 이 아이들이 오늘의 배우이자 주인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극장 로비로 들어서니 밖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곧 관객 입장이 시작됐고 극장 2층의 좁은 복도에까지 관객들이 올라가 앉았다. 오늘은 인천아트플랫폼 극장에 마을극장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마을주민들이 모인 것처럼 떠들썩했는데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공연 <길․동무․꿈 2014>를 연 기찻길 옆 작은 학교는 1987년 만석동에 사는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현재 만석동에 이어 강화군 양도면에도 위치해 있다. ‘구도심으로 밀려나 문화적, 교육적 환경이 점차 열악해지는 중,동구 지역에 위치한 기찻길 옆 작은 학교는 아동․청소년들과 함께 공부하고 공연 활동을 하는 등 지역공동체 문화를 활성화’(인천아트플랫폼 공연소개 페이지에서 참고)하고자 하는 곳이다. 이번 24회 정기공연은 학교의 졸업생들과 교사들이 주축이 된 칙칙폭폭 인형극단과 함께 꾸려졌다.
무대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열리고 빛이 들어오자 초등학교 4~6학년의 아이들이 무대에 섰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무대 오른쪽에 앉은 밴드의 음악에 맞춰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내 노래를 들려줄게’의 가사를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이 촉촉해졌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정직한 목소리가 어느 관객의 마음을 무장해제시켰다.
<길, 동무, 꿈 2014> 인형극 공연
이어서 ‘오늘이’의 이야기가 인형극으로 펼쳐졌다. 오늘이는 재두루미와 고양이 등의 여러 동물들이 보살핀 아이이다. 자신을 낳고는 원천강으로 떠나버린 부모를 찾기 위해 오늘이는 길을 나선다. 오늘이가 가는 길에는 평평한 길도 있고 오르막길도 있다. 오늘이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넘어지기도 한다. 인형의 이런 움직임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감싼 이들이 만든다. 인형 하나에 2~3명의 조종자가 붙어 머리, 팔, 다리 등을 움직인다. 인형을 조작하는 검은 존재들은 각각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응원해주는 숨은 인물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인형극처럼 한 아이를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는 길 위에서 수문장, 홀로 핀 연꽃, 공부만 하는 도령,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등의 친구들을 만나 도움을 받고 친구들의 부탁도 들어주기로 약속한다. 부모를 만나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무대 벽에 영사됐다. 이 장면이 영상으로 처리됨으로써 오늘이가 겪는 기쁜 순간이 꿈만 같은 장면으로 표현됐다. 오늘이는 부모를 만나고 다시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서 친구들이 알려달라고 부탁했던 것들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홀로 핀 연꽃에게는 자신을 나눔으로써 더 많은 꽃을 피울 수 있단 걸 알려준다. 무대에서 연꽃송이 여러 개가 별처럼 빛나자 객석에서는 ‘와~’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무기가 아직 용이 되지 못한 것은 여의주를 세 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준다. 이무기는 욕심을 버리고 두 개의 여의주를 오늘이와 친구에게 나눠준다. 반짝이는 연꽃송이와 여의주, 오늘이의 여행길을 표현한 질박한 느낌의 기다란 천, 또 여러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작게 만들어진 인형 등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아무리 힘든 길이라 할지라도 자신은 꼭 가야만 하고 또 갈 거라고 다짐하는 오늘이의 모습에서 ‘자신을 찾아 떠나는 이’의 결연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오늘이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역시 ‘성장’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블랙라이트 공연으로 이어졌다. 자외선 등을 활용해 형광색의 효과를 내는 공연으로 집게네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위기와 맞닥뜨렸을 때 집(껍질)을 버리지 않고 그 안에 머무르려 하는 집게들은 잡아먹히고 마는 반면, 집을 버린 집게는 살아남는다. 그리고 살아남은 게들은 자신만의 새 집을 찾아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집을 버리지 않고 있다가 죽게 되는 오빠 게를 보고 ‘오빠~ 어떡해~’라고 말하던 귀여운 목소리에 관객들은 웃기도 했다.
타악 공연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발산하는 에너지와 어우러져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시원하게 했다. 타악 소리가 청소년들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아이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 받으며 리듬을 타는 가운데 카혼, 젬베, 북, 장구, 플라스틱 통 등의 소리가 서로 어우러졌다.
<길, 동무, 꿈 2014> 야외 부대행사
이어지는 영상은 기찻길 옆 작은 학교를 소개하고 또 공연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혼란스러운 사춘기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감정조절이 잘 안 되고, 부모님께 화를 내고, 화가 나서 대들고 그러면 옆 친구가 함께 대들고, 만사가 귀찮아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은 좋았지만 이미 공연을 통해 아이들을 만났기 때문인지 이 밖의 다른 내용들은 사족처럼 여겨졌다. 특히 아이들의 경험을 독려하는 어른들의 시선과 손길이 영상 안에서 드러날 때 나는 앞서 본 공연에서 느꼈던 감흥과 대비되는 영상의 낯선 질감을 바라보았다. 이를테면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과 아이들이 만나는 장면은 영상만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물론 영상은 전반적으로 학교와 아이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었으므로 여러 가지 활동을 스케치한 것 중에 하나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들이 겪는 현실과 또 아이들과 어른들의 만남은 더 구체적이고 섬세한 접근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였다.
기찻길 옆 작은 학교에 대한 소개 중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오디션을 보고 공연을 한다. 힘들지만 재미있다.’ 팸플릿을 보다가 소리 내어 웃었다. ‘힘들지만 재미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순탄치 않았을 연습 과정과 지치는 시간을 통과해 아이들과 어른들은 무대에 도착했다. 공연 전체적으로는 더듬더듬 리듬을 찾아가는 서투른 순간도 있었지만 물론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간 안에서 아이들이 담담하게 빛나며 자라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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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제4회 플랫폼문화비평상 공연 부문 당선.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문학․비평․연구 부문 4기 입주예술가.
최근 글로 <비와 악(惡)에 젖어버린 남자들> <사탕 물고 쓴 커피를 마시는 기분>, 희곡 <마지막 짜지앙미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