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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괘념미술

2016-11-23(Wed) ~ 2016-12-04(Sun) [기획전시]#괘념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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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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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트플랫폼이 기획전시 <#괘념미술>展의 클로징 행사로 특별 강연을 마련하였습니다. 고등어, 김푸르나, 서해영, 조원득 등 이번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들 속에서 젠더와 페미니즘 이슈를 함께 읽어보고 토론해 보는 자리입니다. 별도의 신청 없이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괘념미술>展 클로징 특강 - '미술 속 젠더 이야기'

강연일시 : 2016.12.04(일) 16:00

강연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

강 연 자 : 조이한(아트 에세이스트, 『젠더-행복한 페미니스트』(2016, 가쎄 출간) 저자)

 

조이한은 1989년 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에 독일로 유학, 1994년~2004년까지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미술사와 젠더학(남성학)을 공부했다. 2005년에 귀국하여 현재까지 인하대, 경원대 대학원, 성균관 대학교, 서강대 평생교육원 등에서 서양미술사와 현대미술이론을 강의했다. 그 외에도 한겨레 문화센터, 세종 아카데미, 상상 아카데미, 에이트인스티튜트 등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미술사 강의를 하며 아트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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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템포(Col Tempo), 시간과 함께

 

 

인천아트플랫폼 기획전시 <#괘념미술>전이 오는 11월 23일부터 12월 4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에서 개최된다. 4월부터 전시와 관련된 모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비교적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전시 하나를 만든 셈이다. 그래도 오프닝 날짜가 다가오자 쫓기고 허둥대는 모양새는 여느 때와 매한가지다. 미래의 분주함(시간의 부족함)을 예상치 못하고, 예상했다 하더라도 기민하게 반응하지(시간을 미리 미리 아껴두지) 못하며 현재를 사는 우리, 아니 나...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며 기억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되찾고 뒤쫓을지 고민하고, 앞으로 올 시간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린다, 맞이한다. 이번 전시도 그렇게 열게 되었다.

 

전시는 ‘괘념’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하였다. ‘마음에 두고 걱정하거나 잊지 않음’이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참여 작가들이 본인들의 관심사, 화두, 고민,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 의문, 풀어야할 과제, 혹은 괘념이라는 단어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한 것들을 작품으로, 글로 표현하였다. 그렇게 펼쳐놓고 보니 결국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고민하며 겪어 온 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 앞으로 맞이할 시간... 작품 속에는 이런 시간들이 녹아있다. 시간이라는 연결 고리에 꿰이지 않을 것이 과연 이 세상 무엇이겠냐만은...


프롤로그 : 메멘토 모리

조르조네(Giorgione: 1477-1510 추정)의 그림 중에 <노파 Vecchia>라는 작품이 있다. 한동안 티치아노가 자기의 어머니를 그린 것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지금은 대다수 조르조네의 작품으로 인정한다.

 

조르조네_노파_68×59cm_캔버스에 유채_1506(추정)_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소장

 

여기 한 노파가 45도 각도로 몸과 고개를 돌리고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다. 머리에 쓴 흰 두건과 어깨에 두른 흰 숄 등 옷차림이 남루하다. 주름진 얼굴엔 세월의 풍파가 그대로 묻어난다. 노인은 화면 밖 보는 이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듯 입을 반쯤 벌리고 있다. 모아 쥔 손과 검지 손가락은 노인의 가슴께를 가리킨다. “나를 좀 보라”는 듯. 손에는 종이인지 천인지 모를 조각 하나가 들려 있다. 조금 가까이 들여다보면 ‘콜 템포 Col Tempo’라고 쓰여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시간과 함께’라는 뜻이다.

 

노인이 건네는 말은 무엇일까? 아니 화가 조르조네는 추하다면 추하다 할 이 노파의 초상화로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인간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표현하고자 했고, 권위의 선전수단으로 사용됐던 당시 초상화의 규범에 완전히 반하는 이 작품으로?

 

이 초상은 어떤 특정 인물을 그렸다기보다는 노화와 죽음에 관한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게 좋다. 노인은 눈매와 입모양, 표정과 손동작으로, 그리고 종이에 쓰인 문구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도 나처럼 시간과 함께 늙어갈 것이다. 그리곤 죽음에 이를거야...’ Col Tempo라는 문구는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를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관객과 노파 사이에 놓인 저 가로대는 초상화 속의 인물이 실제의 인물이 아니거나 고인일 때 사용했던 조르조네 당대의 도상학적 장치이다. 일종의 비석인 셈. 이 가로대를 통해 노인이 있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저승이 되고 우리는 현세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죽음을 기억한다.’

기억한다.

기억한다.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

잊지 않겠다.

잊지 않겠습니다.

 

 

플랫폼 큐레이션

<#괘념미술>전은 인천아트플랫폼의 2016년 신규 사업인 ‘플랫폼 큐레이션’을 마무리하는 행사이다. ‘플랫폼 큐레이션’은 레지던시와 필히 연계되는 오픈스튜디오나 입주작가 결과보고전시 외의 기획 전시를 추진하는 내용으로, 레지던시의 학예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공동의 전시 기획을 시도해 보겠다는 취지였다. 미술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관심 있는 누구든 모여서 공동으로 전시나 예술 행사를 기획하겠다는 것, 기한에 쫓겨 치러내는 데 급급한 전시가 아니라 충분한 대화와 연구의 시간을 갖고 알찬 전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사업의 목표였다.

 

그렇게 4월부터 미술에 종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스터디 모임 <나의 미술관(觀), 나의 전시관(觀)>을 시작했다. 스터디 멤버가 돌아가면서 미술이나 전시에 관한 텍스트를 읽고 의견을 나누었다. 8월까지 총 열 번의 모임을 가졌고 이후 9월부터는 본격적인 전시(작품) 구상과 준비에 들어갔다.

 

스터디와 병행하여 다양한 미술계 종사자, 전문가들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얻거나 조언을 듣는 <예술가의 자기 경영을 위한 IAP 특강>도 매월 한 번씩 4월부터 10월까지 총 7회에 걸쳐 진행하였다. 함께 전시 관람을 가거나 다른 미술 공간들을 탐방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동의 활동을 통해 전시의 주제나 기획의 방향이 서서히 도출되리라 기대했고, 그렇게 ‘괘념’이라는 주제어로 가닥이 잡혔다. 


우리를 괘념케 하는 것 

올해는 특히 미술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강한 회의를 느끼게 할 정도로 미술계에 사건과 논란거리가 가득했다. 사람들은 화가 나다 못해 체념에 이르러 ‘힘 빠진다’고 반응했다. 대작, 위작,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임명에 관한 논란, 각종 사안에 관한 미술계 의견 분열, 검열, 블랙리스트, 그리고 미술계 내 성추행까지... 우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걱정거리, 괘념거리가 쌓여만 간 것이다. 작업의 소재가 많아졌다고 좋아할 일은 아닐 터다. 난세에 예술이 더욱 흥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동의나 수긍은 각자의 몫이다. 미술계는 물론 나라 전체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끙끙 앓고 있는 상황이기에, 각자가 지니는 '괘념‘의 강도는 세지고 무게는 더해져 갔다. 주로 부정어로 쓰이는 ‘괘념’이라는 단어를 긍정으로 끌고 나와야 하는 상황들이, 개의치 않고 편히 살면 좋으련만,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나 자주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괘념’해야 할 것들 천지.

 

전시 타이틀 ‘괘념미술’은 ‘개념미술’을 패러디한다는 의도가 맞다. 개념미술이 어쩌다 불성실한 창작 과정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주는 미술 용어가 되었나. 아이디어의 제공과 제작 하청을 뜻하는 간편한 용어로 의미가 확장되고 용법이 전환된 상황을 한번쯤 상기해 보아도 좋으리라.

   

고등어_21세기의 완벽한 신체를 위한 시도_영상과 가변설치_2016


김푸르나_경계없는 신체-4_40×40cm×3ea._캔버스에 아크릴_2016

 

서해영_이것은 조각이(아니)다_영상, 가변크기_2016

 

<#괘념미술>전에는 9명의 시각예술가, 5명의 비평가와 기획자를 비롯하여 인천아트플랫폼 직원들이 각자의 ‘괘념’을 작품으로, 글로 드러낸다. 여성, 신체, 자아를 찾는 여행, 장소, 특히 내가 속한(하는) 장소, 공간, 도시, 세기말, 파국, 예술의 가치, 예술의 기능, 예술 장르와 형식에 대한 고민 등등 각자의 ‘괘념’은 그 폭과 깊이와 종류가 상이하다. 전시를 위해, 기왕에 하던 작업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내용을 변형, 발전시킨 작가도 있고(김푸르나, 김민정, 신지이, 이민경, 정상희, 정성헌, 최선), 이번 계기에 영 색다른 형식 실험을 한 작가(고등어, 서해영, 최현석)도 있다. 무명씨, 익명이라는 뜻의 ‘아노님(Anonyme)’이라는 3인 콜렉티브가 이번 전시를 계기로 헐겁게나마 조직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한 명의 글쓴이와 두 명의 그린이로 구성된 이 조직의 길잡이 역할은 방드르디(금요일)가 맡았다. 작가들은 대체로 신작을 출품하기로 하였고, 작가들이 제안한 작품들이 내용상이든 형식상이든, 전시 주제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든, 거부된 경우는 없다. 다만, 최선의 ‘자홍색 족자’만이 큐레이터가 따로 출품을 요청하여 전시하게 된 경우이다. 이 작품은 구제역 당시 살처분 당한 돼지들의 숫자를 하나하나 타이핑하여 족자에 인쇄한 것이다. 무참히 희생된 돼지 수에 비례하여 작품의 크기가 상당하다. 최선은 현실의 잔혹함을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치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민경_두 개의 집(푸른 헛간과 흰 콘크리트 집)_가변크기_종이, 우드락, 혼합재료_2016

 

아노님_할로윈 파티, 선별적 재생, 괘념치 않다

 

정성헌_제로룸(연희동, 비전동, 창천동의 방) / 제로룸(연희동, 성산동의 방)_24.5×101.5cm_

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2016


괘념한다는 것, 잊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에 맞선다는 것이다. 기억의 선명도를 낮추는 시간의 파괴력에 저항하겠다는 것이다. 시간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없애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고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 (부질)없어질 것을…’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잊지 않아야 할까? 더욱이 ‘잊지 않겠다’는 말이 오늘의 한국 땅에서는 앞뒤 문맥 없이 홀로 쓰일 때조차도 노란 리본을 연상케 하는 특수 표현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이와 관련하여서는 전시 도록에 실린 전솔비의 글 <시간의 장면들>의 일독을 권한다.

 

 

최선_자홍색 족자, 깊은 그림

 

 


 최현석_인큐베이션, 금줄

 

전시 그다음, #괘념미술 vol.2

어쨌든 시간이 흘러 전시 개막일이 다가온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전시기획 방법론을 도입하고자 했지만,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즉 다음 질문에 대해서는 전시가 끝난 후에 평가하고 답해야 할 것이다. 전시 사후 자료집도 준비하려고 한다. #괘념미술 vol.2에 아마 다음 질문들에 대한 답이 담기지 않을까 생각된다.

 

1. <#괘념미술>전은 과연 공동의 기획이었나?

2. 스터디를 통한 연구와 논의 내용이 얼마나 전시에 반영되었나?

3. 소통과 논의의 과정은 매끄러웠나?

4. 큐레이터의 권한, 특히 작가 선정과 작품 선택이라는 일종의 고유 권한을 포기하거나 다른 이와 공유하겠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되었나?

5. 인천아트플랫폼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이나 외부인이 참여하였나?

6. 프로그램을 앞으로도 지속할 것인가?

 

어느덧 한해를 마무리해야할 시간이 다가온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무엇을 기억하고 잊지 않을 것인가, 괘념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계속 된다. 시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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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제한구역

 

<24시간 제한구역>은 ‘전시 속 작은 전시’의 형태로,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의 한 구역을 지정하여 제한구역으로 삼고, 이곳에 <#괘념미술>이 진행되는 12일 동안 총 세 번의 작은 전시를 보여주는 구조이다. 그 제한구역은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 1층의 공간을 양분하는 중앙 큰 벽을 말한다. 높이 3미터 길이 10미터의 이 큰 벽은 전시 때마다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른바 명당자리이다. 입구에서 가깝고 관람자들이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자리이며 크기도 커서 공간 구성 시 주로 평면 대작이나 전시에서 가장 부각시키고자 하는 대표작가의 대표작, 주요작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괘념미술> 전시에서는 이 명당 자리를 다르게 운영해 보기로 하였다. <#괘념미술>에 포함되는 작품은 걸지 않고, 별도의 작은 전시들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B동 전시장의 운영시간, 그러니까 관람시간은 통상 낮 12시부터 저녁 6시까지이다. 관람객이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6시간인 것이다. <#괘념미술>전의 작품은 전시 기간 내내 볼 수 있지만, <24시간 제한 구역>의 작품들은 24시간만 그러니까 4일 동안만 전시되어, 관람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한다.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나흘 24시간’인 것. 참고로 ‘24시간’은 을지로 신생공간 800/40에서 운영하는 ‘24시간 레지던시’의 명칭을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24시간 제한구역> 첫 번째 4일간의 전시 (2016.11.23~26)의 주인공은 ‘제한구역’으로 설정된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 중앙벽 그 자체이다. 작품을 걸지 않고, 그 벽 자체를 작품인양 감상하도록 한다. 이 아이디어는 사실 이민경의 동명의 사진 시리즈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민경 작가는 2011년에 이미 금호미술관과 성곡미술관, 아트선재센터의 전시장 구조를 모형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사진으로 촬영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당시 이민경은 작가들이 작품을 걸고 싶다고 ‘욕망하는’ 유명 미술관의 흰 벽 앞에서 막막함과 위화감을 느낌과 동시에 빈 벽이 특유의 미적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민경의 바로 이 작업들을 소환하여 B동 전시장의 흰 벽과 상호 참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이민경_White Wall-Sk001~5_각 40×28cm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2011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 중앙 벽체

 

 

 

두 번째 전시 <일단위 아이덴티티>(2016.11.27~30)는 인천아트플랫폼 7기 입주작가들 중 시각예술 장기 분야 작가들의 1호짜리 작품 13점으로 구성된다. 호당 가격으로 작가의 순위와 중요도가 매겨지는 미술 시장 구조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 비록 ‘소품’일지언정,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즉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작업들, 작가를 대변하는 최소 단위의 작품을 출품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단위 아이덴티티_첫줄 : 고등어, 김순임, 김유정, 김푸르나,

둘째줄 : 서해영, 손승범, 신민, 양유연,

셋째줄 : 위영일, 윤대희, 조원득, 최선, 최현석


 

 

마지막 전시 <어스름한 가치>(2016.12.01~04)는 인하대 미술과 학생 7명, 김민조, 김수지, 박주희, 손민석, 양승주, 이건희, 장윤아가 마련하였다. 이들이 졸업 후 작가로서의 생활을 지속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학생 본인들도 아직 확신이 없는 것 같다. 아직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대표작이 걸리던 자리를 내주며 전시 진행의 기회를 갖게 하였다. 

어스름한 가치_김민조, 박주희, 손민석, 양승주, 이건희, 장윤아


<24시간 제한구역>은 대표작과 주요작을 설정해 온 그간의 전시 관행, 전시 진행 중에 발생하는 갖가지 알력과 갈등, 공간에 숨겨져 있는 권력 관계에 대한 코멘트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전시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전시를 할 때 마다 이 자리에 어느 작품을 걸 것인지 참여 작가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고민스런 장소이기도 하다. 이같이 권력과 위계를 내포하고 있는 공간에 전시 대상을 제한하고, 시간 또한 제한하여 그곳이 가진 파워와 임팩트를 드러내 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시장 내의 작품간 위계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괘념미술>전은 ‘본전시’이거나 ‘메인전시’라고 불리고, <24시간 제한 구역>을 구성하는 세 번의 짧은 전시는 ‘하위 전시’이거나 본전시를 구성하는 하나의 ‘섹션’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질문은 계속되고 대답은 요원하다.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이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