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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플랫폼 아티스트 : 6기 입주 작가 결과보고전

2016-02-18(Thu) ~ 2016-04-17(Sun) 2015 플랫폼 아티스트 : 6기 입주 작가 결과보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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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 전시기간 : 2016년 2월 18일(목) - 4월 17일(일)

■ 전시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 + 야외 공간

■ 관람시간 : 오후 12시 - 오후 6시

 * 월요일 휴관

 * 문화가 있는 수요일(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 오전 10시 - 오후 9시

 * 관람료 무료




[전시 서문]

 

 2015 플랫폼 아티스트 : 6기 입주 작가 결과보고전


2013년 코레일의 노조 파업을 보고 고려대 학생이 대자보로 적어 크게 이슈가 된 글귀가 있다. 모두가 알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매일 수십 번씩 사용하는 그 말은 아직까지도 그토록 낯설게 느껴진다.

내 몸뚱이 하나 놓여있는 그 조차도 어려우니 어찌 살아보련가. 잘 있고 싶고,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은 그저 사치일 뿐인가.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있고 없는’ 것은 ‘살고 죽는’ 문제와 같다. 하지만 사는 것과 죽는 것은 하나이다. 살아있으면서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우리 인간은 스스로 마음을 달래고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어떠한 무거운 짐이 나의 자제 능력을 뛰어넘을 때 ‘있고자 한’ 의지는 점점 약해진다. 잘 있지 못할 때 비로소 사라져버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약한 모습을 갖고 있는 인간은 그러면서도 잘 살고자 한다.

예술가들의 작품들 속에서도 그러한 고민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암호를 해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은 ‘여러분이 작품을 바라보며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읽어주세요’라고 하지 않으니, 그래서 나도 나의 식대로 풀어보기로 결심했다. 

예술가들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고 있었다.

 


살고 죽는 것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고민은 “생존”이다.

바로 어두운 전시장 초입에서 간신히 빛을 비추고 있는 작가 5인의 작품은 ‘생존’에 관해 말한다. 이 작품들은 마치 삶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표현하면서도 살고자 하는 욕망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김유정_[온기]_fresco_90.0x140.0cm_2015

박은하_[폐쇄적 써클], oil on canvas, 148x194cm, 2015

예술가와 동일시되는 회벽, 그곳에 스크레치와 덧바르기를 반복하며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는 ‘김유정’의 [온기], 잎 하나가 죽어 떨어지면 새로운 잎이 나고, 지고 나기를 반복하는 다육 식물을 마치 우리의 생존처럼 표현한 ‘임선희’의 [Leaves], 일상 속에 버려지고 방치된 사물이 본래의 기능을 갖지 못한 채 마치 묘지처럼 보이는 ‘박은하’의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외 푸른 그림 연작 시리즈,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살아가려는 인간 존재를 드러내는 ‘염지희’의 [거리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삶을 물어뜯는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다], 1947년 4월 3일 정치적 문제로 인해 수많은 죽음을 치러야 했던 제주도의 희생자들, 그들의 해골을 자신의 시각에 잡힌 제주도의 돌에 대입해 촬영한 ‘기슬기’의 [무제]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생존”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기슬기_[Untitled 01], archival pigment print, 25x25cm, 2015

더불어 막걸리의 발효 소리 연구에서부터 시작된 ‘배인숙’의 [맛있는 막걸리]에서도 단순한 소리 연구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맛이 없지만 숙성을 위해 끊임없이 소리를 내며 발효 활동을 하는 막걸리는 마치 노련하지는 않지만 열정을 갖는 우리의 젊은 시절과도 같으며, 점차 잦아드는 조용함과 진한 냄새는 노년기의 완숙미를 풍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

살고 죽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면, 이제 어두운 공간을 지나 옆 공간으로 가보자.

이제 우리 인간의 존재 자체를 결정짓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크 라캉은 『욕망 이론』에서 ‘우리의 욕망이 결코 개인적이지 않으며,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개인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게 하느냐를 결정하는 데 “사회”는 큰 영향력을 미친다. 사회를 바라보는 데 있어 의식하지 못하고,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들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미디어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건, 수백 건, 수천 건 일어나는 일들은 사회의 전부가 아니다. 그럼 슬슬 이 도시, 이 세상을 걸어 가보자. 걸어 가다보면 참 잘되었고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판단하며, 혼자의 힘으로 그 잘못된 지점을 해결할 수 없어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Nana&Felix_[Lunar estate], photo print in a frame, dimensions variable, 2015

‘Nana&Felix’는 [Estate] 시리즈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스스로가 만들고 스스로 좌절에 빠지게 만든 ‘부(富)’에 대하여 질문한다. 죽을 때까지 몸이 닳도록 일하며 모은 재산과 부는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를 가지며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한국의 노동과 관련해 근무 환경, 노동법 등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해온 ‘Nicolas ‘Manenti’는 [Taphonomy]에서 한국 이민법을 사무실 책상에 화석처럼 새기는 데, 이는 마치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신해 발화하는 듯 씁쓸하면서도 통쾌한 상황을 보여준다. 긴 모니터 속 ‘Romy Achituv’의 재로 덮인 기둥이 설치된 영상 [Pillar of Ash]은 성경의 출애굽기 13장 21절 중 하느님이 낮의 살인광선과 밤의 추위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도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표현한 것으로, 2015년 6월과 7월 이스라엘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난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를 알게 된 후 그 어두운 사실을 알리고 애도하고자 제작하였다.

임선희_[Reading Drama], HD video, projection, TV monitor, chairs, 00:09:10, 2015

함정식_[경마 인터뷰], 2chanel video, 00:08:12, 2016

또한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즐기는 대중매체를 통해 여성이라는 젠더가 코드화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임선희’의 [Reading Drama], 한국에서 유독 건강한 스포츠가 아닌 도박과 은폐된 스포츠로 인식되는 경마, 그러나 직접 현장에서 근무하며 느끼게 된 다른 시선을 영상으로 담은 ‘함정식’의 [경마 인터뷰], 지금보다 더 자유롭지 못했던 옛 시절 음반 테이프를 사도 꼭 한곡 씩 있던 건전가요, 영화보기 전 나오는 대한 늬우스… ‘백승기’의 [위대한 늬우스]는 영문 제목 [Hell-Chosun News]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대한늬우스로 패러디하여 희극적으로 풍자해 보여준다. ‘강우영’은 미디어에 떠도는 사진과 글, 그 외의 곳에서 수집한 글귀를 모아 현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인 현상을 어둠 속에서 은밀히 비추는 설치 작품 [야간채집]을 선보인다. 이 공간의 마지막 작품으로 ‘위영일’의 [6-3-5-2-6-2]는 우리 삶 속에 일분일초도 눈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맹독성을 갖는 미디어 매체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강우영_[야간채집], mixed media, demensions variable, 2015

작가 8인은 이처럼 사고하며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현 시대에 맞지 않는 진부한 사고, 돈에 환장하여 돈이면 사람도 죽이고 살리는 무서운 자본주의 사회, 미디어 매체의 입맛에 맞춰 자라고 있는 인간 등. 무서운 이 사회에서 우리는 혼자서 고민과 부조리를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어려운 세상이라도 내가 살 수 있는 이유

‘우리 인간은 혼자가 아니다.’

살아가며 힘이 필요할 때 찾는 것은 무엇보다도 ‘당신’이다. 1층 전시 공간으로 나와 2층으로 올라가면 네가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고,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 살아가는 인간임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그 공간에서 미약하게나마 우리는 연대의식을 갖고자 한다. 그리고 세상살이가 참 힘들더라도 내 생을 잘 유지보전하고 싶은 마음을 느껴보고자 한다.

전형산_[노-시그널], mixed media, sound installation, 35x20x8cm, 2015

우선 2층으로 올라가기 전 탁구대 테이블이 놓여있다. 여러분들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고민하고 확장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Sayaka Ohata’는 서로 간에 입으로 똑딱똑딱 거리며 소리를 주고받는 영상, 공을 주고받는 탁구 놀이 영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이때 바톤을 받아 대화를 주고받는 것은 여러분이다. 그녀는 [Speech Bubbles]를 통해 또 다른 말풍선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2층으로 걸어가는 길에 소리가 들린다. ‘전형산’의 [노 시그널]은 신호로 가득 찬 사회 속에서 방향성과 존재를 잃은 채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자들이다. 그곳에서 나오는 소리는 상대방의 소통과 관심을 기다리는 세상 모든 우리들의 아우성이다.

‘Klara Petra Szabo’는 잠시 한국에 체류하며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이 드리워 있는 작품 앞에 서서 나의 체온 열이 전달되었을 때 [Memorandum] 속 까만 화면은 마치 동화 백설공주 속 거울처럼 그녀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변한다. 또한 바닥에 놓인 두 박스 앞에서 고개를 까닥까닥하면 그녀가 눈을 감고 떴을 때 그녀의 고향인 헝가리와 잠시 동안 뜨거운 추억을 만들었던 한국의 모습이 보인다. [Under the same sky]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같은 하늘 아래 우리는 함께 마주한 것이다. ‘Ece Yildirim’ 역시 사진가로서 인천에 머물며 포착했던 동네 이웃과 상인, 길거리 등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리고 삶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서로의 댓글이 오고가는 인스타그램을 차용한 작품명 [인천스타그램]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추억을 다른 이들과 공유한다.

지희킴_[커플, 바다 그리고 노인], gouache on paper, 14x17cm, 2015

안으로 살짝 들어오면 작은 드로잉 두 점이 보인다. ‘지희킴’은 누군가 읽지 않는 책, 어떤 이로부터 받은 책들을 우선 중요한 재료로 한다. 작업은 시작부터 다른 누군가가 없으면 시작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속의 이야기는 마치 어릴 적 원숭이에서 백두산까지 연상해 불렀던 노래와 비슷하다. 즉 삶에서 영향을 받은 아주 사적인 기억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연상돼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커플, 바다 그리고 노인]은 ‘미시마 유키오의 저서 『가면의 고백』의 한 글귀(기묘한 서글픔에 나는 몸을 떨었다. 고독은 태양처럼 나를 태웠다.)로부터 부재중 통화, 아내의 장례식에서 판타지 소설을 읽던 남자, 태연하게 거짓말 하던 입술, 개연성 없는 우연들, 바다 위에 떠있던 70세 노인과 살해당한 두 명의 연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길다래_[배치들], mixed media, demensions variable, 2015

더 안쪽에는 도시를 걷거나 또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작가의 삶 속에 뇌리에 영향을 미친, 감정의 변화를 동요한 지점을 찾아, 그녀가 수집한 사물들, 개인의 감성적 접근이 중요한 구조물로 사적 공간을 구성한 ‘길다래’의 [배치들], 너와 내가 접촉하고 이어주는,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 “TOUCH”에 대해 한번 쯤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Paul Zuerker’의 [www.etymonline.com/index.php?term=touch]가 선보이며 우리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조명해본다. 

얼라이브 아츠 코모_[팰름시스트], mixed media, demensions variable, 2015

여러분은 종이가 없던 시절 양 가죽에 글자를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이전의 글자들의 흔적이 중첩된 문서 팰름시스트를 아는가. 그것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얼라이브 아츠 코모’의 [팰름시스트]는 2015년 12월 작가의 은밀한 작업실을 사람들에게 시간을 두고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하여 온전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프로젝트이다. 추억과 사건을 끌어낼 수 있도록 꾸며진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내가 들어가기 전에 있었던 사람들의 흔적을 느낄 수도, 있었을 법한 일들을 상상할 수도 있었다.

이제 느껴지는가. 8인의 작가는 우리가 나와 다른 너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내 삶을 잘 살기 위해서 네가 필요할 수도 있고, 혹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불안, 환영과 환상… 다른 세계로 떨쳐버리기

앞으로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심리적 불안은 계속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이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예술의 힘으로 불안에서 벗어나보자. 실제 세계의 밖은 갇혀 있는 우리가 더 넓고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나마 희망을 갖고, 나의 마음을 달래보자.

이창훈 + 간판오빠 오주영_[걱정이나 근심이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 LED chanel, 33x985x11cm, 2015

유토피아에 대해 아는가. 유토피아의 사전적 정의는 “걱정이나 근심이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이창훈’은 [걱정이나 근심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을 통해 과연 이러한 세상이 있는가 묻는다. 이 글귀는 외부에 설치되어 손이 닿지 못하는 높은 곳에 있고, 점자로 되어 있어서 이해할 수도 없다. 그렇게 우리가 닿지 못하는 저기 저편에 있거나, 아니면 없는 것이다. ‘최영’은 [시 차]는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신체로부터 파생되어 심리적인 불안까지 이끄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편지글 일부를 살짝 보면 신체로부터 파생된 불안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한쪽 눈을 가리고 산다는 것이 이토록 불편한지 몰랐습니다. 저의 일상은 물론이거니와 심리적으로도 많이 불안한 것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공항에서 심한 안개로 인해 제가 탄 비행기가 연착한 적이 있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세상을 날았던 기분과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던 초조함은 서로 닮은 것 같습니다.” 

과연 삶 속에서 완성된 모습들을 보이는 인위적인 움직임과 결과는 그것이 되기까지 있어온 과정보다 중요한 것일까. ‘박윤주’의 [Pink to Brown]은 나의 삶 속의 과정이 완결되지 못한 채 가능성만 남게 되는 무능력, 그리고 완성태가 되지 못하고 버려질 것만 같은 불가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앵무새 핑크처럼. 완전한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묻고 있기도 한다.

이주현_[신묘막측 神妙莫測], 3D print, mirror, demensions variable, 2015

‘이주현’ 역시 비슷한 맥락 속에서 이야기한다. [신묘막측]이 만들어지는 동안 그녀의 뱃속에는 태아가 있었다. 산전 검사에서 실상이 아닌 초음파 모니터라는 하나의 허상으로 아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3D 인쇄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허상이 된 태아 조각은 거울의 무한 반사를 통해 여러 허상을 만든다. 그렇게 수 없이 불완전한 허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또 다른 허상을 만들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상이라고 불리든 다른 세계라고 불리든지 간에, 그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이다. 

이영주_[쌍안경], HD video, 00:15:00, 2015
또한 '이영주'는 자유공원 꼭대기, 그리고 3미터나 되는 긴 좌대 위에 서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을 소재로 한 작품 [쌍안경]을 선보인다.
꼭대기에 위치한 맥아더 장군 동상을 보았는가. 쌍안경을 들고 인천의 정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는 한국인에게 불멸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동상에 영혼이 있다면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물음의 시작으로, 한미 관계, 아랍권 국가들과 미국의 관계, 남성의 정치 드라마 같은 전쟁 등을 고민하며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인진미_[SIMULACLUM], 3channel video, 00:02:58, 2015
‘인진미’는 [SIMULACLUM]에서 개인의 한 세상이 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 불과한 나의 일상은 더 큰 세상에 복제되어 작은 모습으로 비춰지고, 그 큰 세상은 그보다 더 큰 세상에 복제되어 작은 세상으로 비춰진다. 그렇게 세상이 반복된다. 우리는 왜곡되고 복제되는 시뮬라크룸으로 현실 세상을 확장해볼 수도 있으며, 이를 통해 지금 현재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일루전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투사하는 ‘Jedsada Tangtrakulwong’의 [dis(appear)] 역시 위의 맥락과 연계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그리고 언제 생길지 몰라 더 무서운 불안은 그렇게 우리 스스로의 내면에서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고, 우리는 이토록 무서운 감성을 극복하고자 그것을 어디론가 폭발시키고 있다.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

그렇게 몸 하나 가누며 존재하는 것에 대한 평생 동안의 고민, 왜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며 잘 살고 싶은 욕망, 태어날 때부터 네가 있기에 버틸 수 있는 능력, 불안 속에서도 희망과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탈피는 인간으로 태어나 숙명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알 것이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기’로 한다. ‘잘 있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 예술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기로 한다. 예술은 마음을 달래주는 도구이자 발언할 수 있는 도구,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고 표현하는 도구, 환상으로 세상을 다시 새롭게 만들어보는 참 좋은 도구이다.

이번 전시에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분명 혼자의 힘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혼자가 아니기에 이곳에서 함께 안부를 물을 수 있다.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

 
 
  
※ 이번 전시에서 2015년 공연/비평 입주 작가(김성배, 앤드씨어터, 우현주, 전강희)의 아카이브 자료를 함께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