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2(Sat) ~ 2016-07-21(Thu)
11:00-18:00
B 전시장1 G1갤러리
장진의 달빛·心心한 풍경
- 최승훈 (대구미술관 관장)
장진의 작업개념은 달빛의 개념이다. 달은 본래 신화적 상징물로 생성, 탄생, 소멸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순환적 생명을 지닌 천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달빛’은 재생과 부활의 영토로 이끄는 생명의 탯줄이며 구원의 상징물이다. ‘달’이 떠오르는 순간, 지상과 천상은 하나로 연결되고 지상의 삶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여 빛을 뿜게 되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반복되는 소재들-대지, 수면, 수풀, 바람, 구름, 하늘, 달, 천공(天空)-은 서로 교응하고 수렴하면서 동일한 의미 선상에 놓여 있으면서 각각 아름답게 은은한 빛을 분광한다. 그 광휘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신화적 아우라를 형성한다. 그의 그림은 신화적 상상의 지평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화적 아우라는 대상과의 관조 상태에서 가능해진다. 우선 외형적 접근을 해 보면 연상되는 바는 다양하다. 거친 필선, 동그란 원, 군집의 건물들을 보며 스산한 공기의 흐름 또는 우주의 깊은 공간을 느낄 수도 있다. 그의 작품세계에는 그만큼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하고, 넓은 영역에 걸쳐 어느 특정한 형식과 방법에 갇혀있지 않고 자유롭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먹색의 부드럽게 스미는 효과는 더욱 몽환적 분위기를 북돋운다. 그림에서 둥글게 나타나는 것은 달의 표상이며 달의 윤곽을 먹의 농담과 필(筆)의 운용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담아 냄으로써 때론 깊은 천공(天空)을 느끼게 하고 때론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아주 단아하게 하늘에 떠 있는 달에서 부터 어두움 속에 밝은 빛이 느껴지는 달까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달의 다양한 표정들이 살아 있다.
달을 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수면을 연상시키는 그림에서도 주도하고 있는 분위기는 명상의 공간이다. 그 속에 보이는 수풀은 목가적 분위기를 진하게 전한다. 구름의 달무리와 풀의 미세한 흔들림이 청량한 공기의 흐름을 감지하게 만든다. 야경을 그린 도심의 표정도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 번잡한 도시의 소음과 일상은 밤의 어두움에 묻히고 빌딩의 집단적 윤곽만이 어슴프레 나타난다. 아늑하게 밤이 내리면 도시는 한순간에 고요한 묵상의 시간에 잠긴다.
화면에 두 개나 등장하는 달은, 사실 비논리적 설정이겠지만, 시각적으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붉은 색의 달은 하늘의 빈 공간에 밀도를 부여하고 있어서 화면 구성에서도 안정적이며 산뜻하기까지 하다. 두 달은 새로운 시각적 언표로써 그의 시(時)와 간(間)의 개념적 측면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시간의 층위를 생각할 수 있고 기억의 겹침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장진의 ‘달빛’ 이 지니는 의미와 뉘앙스는 매우 중요하다. 대낮이 갖는 명료함과 뚜렷한 목적을 전제로하는 일상성 동적 공간과 속도감 등등의 요소들로 대조하여 볼 때, 달빛이 지니는 은은함과 어둠에 묻힌 모호한 정적 공간, 어슴프레함, 신비함은 다분히 명상적인 상태로 이어지고 대도시의 풍경은 달빛 아래에선 목가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작품에서 보이는 명상적 분위기는 반복해서 그어대는 무상적 행위와 하나의 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의 단순반복적 행위는 인위를 초극하는 정신상태의 화면으로 만든다.
그가 보여주는 달의 관념성은 마치 사군자화가 지니는 추상성과 맥이 닿아 있다. 그의 그림에서 달, 풀, 구름 등등의 대상은 ‘무엇’이라기보다 ‘무엇 같은 것’이라는 식의 접근이 타당할 것이다. 즉 달, 풀, 구름처럼 보이는 것이라는 식의 설명이 된다. 이것은 동양화가 갖는 사유적 특성이기도하며 장진의 추상적 시각이 관념의 대상에서 비롯됨을 뒷받침한다. 이 점을 미술사가 김정락은 “장진은 그가 머무는 곳에, 즉 현존의 현장에서 그리는 대상을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채취한다. 주로 시각적인 사생에 그치는 사생이 아니라, 몸으로 그것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구체적이고 재현적인 조형언어에 대해서는 관심을 약간 여민다. 오성의 개념에 기대어 언급한 것처럼, 눈으로만 대상을 관찰하지는 않는다. 그는 온 몸으로 풍경이 주는 감동을 느낀다” 라고 말한바 있다.
두손으로 마구 문지르고 속필로 그어댄 굵고 가는 선들은 물론 시각적 효과를 위한 의도적 행위이긴 하지만, 그 과정은 다분히 무상적 반복행위로서 장진의 작업관을 명확히 한다. 일반적으로 선(禪)미술로 연결되는 이 무상성은 장진에겐 목가적 풍경, 명상적 분위기, 먹의 카오스적 상태로 나타난다. 그의 그림은 사실성과 사의성, 외연과 내포의 교응하는 관계 위에서 자신 만의 해법을 찾아가는 그의 여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가 더 많은 길을 통해 더 넓은 영역으로 나아갈 것을 확신한다.
※ 장진 작가는 2010년 인천아트플랫폼 1기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대구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현대미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