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4(Tue) ~ 2025-01-26(Sun)
11:00~18:00
G1 프로젝트 스페이스1
무료
032-760-1000
2024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청년예술가 스튜디오 지원사업> 입주작가전
인천아트플랫폼은 <2024 인천 청년예술가 스튜디오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입주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발표공간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전시정보
전 시 명 : 《아쌍블레 Assemblé》
작 가 명 : 정지현 @jhjung91
전시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프로젝트 스페이스 1(G1)
전시기간 : 2025.1.14.(화)-2025.1.26.(일)
관람시간 : 화-일 11: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서문
발레에서 ‘아쌍블레(assemblé)’는 공중에서 두 다리를 모으는 동작을 일컫는다. 이 동작은 주로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물러나는 연결 동작으로 활용되며, 발레의 기본기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기본 동작이라고 해서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 아쌍블레는 발레의 5번 자세(fifth position)에서 시작된다. 두 다리를 X자로 교차해 한 발의 앞코가 다른 발의 뒤꿈치에 닿게 한 채, 무릎을 구부린 쁠리에(plié) 자세를 취한다. 그런 다음 앞에 놓인 발로 바닥을 미끄러지듯 쓸어내리며(tendu), 뒷쪽 다리로 힘차게 뛰어오른다. 그렇게 공중에 떠서는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정렬하고, 착지할 때는 처음의 5번 자세에서 양발의 앞뒤를 바꾼 상태로 지면을 딛는다.
무용수는 이렇게 짧은 순간 중력을 거스르며 찰나의 우아함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우아함은 단순히 무용수가 뛴 높이에서 오는 감응이 아니다. 이윽고 중력에 순응하게 된다는 필연을 알면서도, 끊임없는 훈련과 불편한 자세를 통해 완성되는 낯설고도 가능한 움직임. 이 상반된 힘들의 불화와 조화가 눈앞의 장면을 감상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정지현 작가의 개인전 《아쌍블레 Assemblé》는 이러한 발레의 동작을 제목으로 차용하며, 도구에 단련된 현대인의 신체,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작품 속 상승과 하강의 역학을 이야기한다. 사실 작가의 작품과 고상한 발레 동작을 단박에 연결시키기는 힘들다. 되려 전시장의 풍경은 전시 제목을 비슷한 발음의 다른 단어로 이끄는데,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단어 ‘아상블라주(assemblage)’가 바로 그것이다.1) 이는 여러 입체의 물질, 사물들을 한데 모아 작품을 만드는 기법, 혹은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지칭하며, 작가의 작업 방식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단어가 된다. 실제로 작가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도구들을 그러모아 작품을 제작한다. 목 이완기, 풀업바, 등짐지게, 의자, 유아차 등, 결제창을 거쳐 작가의 작업실에 다다른 도구들은 사용되기 위해 맞닿는 신체 부위를 대리하거나, 형태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신체의 부분들에 위치하는 것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본디 신체를 보좌하기 위해 고안된 존재들이지만 작가의 자애로움으로 신체를 대신할 수 있는, 그 자리를 꿰찰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허나 정작 작품에는 도구의 맹랑함을 용인하는 인자함보다 처절함이 더 짙다. 거무죽죽한 사물들의 용도를 무시하고 구태여 그것들을 그 자리에 놓고는 끈이나 케이블타이로 옭아맨 광경에서 작가의 의지와 집착이 드러난다. 도구를 보조 기구로 여기기보다,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심지어는 신체의 일부라 여기는 작가의 의존적 태도가 기저에 자리하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도구가 항상 이런 믿음에 부응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신체 능력을 증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신체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때로는 신체를 퇴화시키기도 하니 말이다. 좌상, 앙와상, 반좌상과 같이 사람의 자세를 어설프게 모사하는 도구들의 집적은 이처럼 유용함이라는 목적을 초과한 그것의 영향력과 이를 사용하기 위한 몸의 기이한 수행을 을씨년스럽게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도구의 시중을 자처하는 데서 음울로부터의 탈출구가 마련된다는 역설 또한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된다. 도구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숭배하는 물신화의 태도는 무력한 신체에서 비롯된 좌절감과 심연으로 가라앉는 하강의 힘에 맞서 상승의 에너지를 생성한다. 설령 그것이 그릇된 추종일지라도, 고개를 젖혀 대상을 우러러보는 작가의 시선은 자기 주위의 사물을 자신의 조건으로 여기고, 나아가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을 거치며 만든이 자신을 구원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중량 원판은 작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솟아오르는 힘을 강조하는 무게 추로 역할하는 듯하며, 안정성과는 거리를 둔 작품의 아슬아슬한 자태 역시 가시 영역 뒤편의 인력의 작용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학적인 자세와 혹독한 연습량, 이를 통해 이루는 중력에의 저항과 곧 이은 순응.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또 즐기는 것이 아쌍블레의 정수라면 전시 《아쌍블레 Assemblé》에서의 정지현 작가의 작품들은 이 고혹적인 자세를 유지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발레 공연을 볼 때처럼 전시장에서 마주한 풍경이 꼭 벅차오르거나 감동적이지만은 않다. 생산자가 의도하지 않은 목적으로, 사용자에게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되는, 어쩌면 제 기능을 이탈했다고 말할 수 있는 도구들은 우리가 행하는 것을, 우리가 일어나도록 만든 일을 증언하기 때문일 터이다.2) 능동성을 뒤로하고 도구에 종속시키기를/종속되기를 자처한 현대인의 어그러진 욕망과 그런 욕망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그 자체로서의 형상(사물)의 공허함은 세속적인 것을 탈속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어렴풋이 가늠된다. 그런 작품들이 쉬지 않고 선보이는 아쌍블레, 그 매력적인 동작을 보며 거북하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글. 박서영 (독립 큐레이터)
1) ‘아쌍블레(assemblé)’와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모두 ‘하나로 모으다’, ‘집합시키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assimulare’에서 비롯된 단어다. 아쌍블레가 두 다리를 공중에서 모으는 동작이라면, 아상블라주는 서로 다른 입체물들을 모아 완성하는 작품을 의미한다. 이렇게 두 단어가 공유하는 본질적 의미를 떠올리면 그들 간의 연관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 빌렘 플루서, 『사물과 비사물』, 김태희, 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3, p. 25.
작가소개
정지현(b.1991)은 미국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조소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작가는 특정 사물의 쓰임과 생김새를 통해 사용자를 연상하면서 일상 사물에 대한 경험을 조형 작업으로 풀어낸다. 도구를 사용하는 몸의 움직임이나 통증, 사물에 의존하는 신체가 작업의 소재가 되며, 최근에는 사물의 가학적 이미지와 신체를 연결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사물과 신체를 주제로 아상블라주 조각을 제작하고, 이를 활용한 동작을 수집하여 서사를 담은 안무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조각을 몸에 장착하거나, 조각을 흉내 내는 등 다양한 신체 움직임을 안무로 표현하며, 신체가 사물로, 사물이 다시 신체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탐구할 예정이다.